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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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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y 28. 2021

너 떠난 후

웃으며 그리워하기

늘 밝은 에너지를 갖고 살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약간은 타고 난 밝음이 있어서 유머와 위트만 살짝 얹어주면 꽤 재미있는 사람 축에도 들었다. 그랬었는데..., 나는 이제 단 3초 만에 눈물을 흘릴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젯밤에도 잠이 쉽게 들지 않아서 2층 서재로 올라갔다. TV를 켰다. '동물의 왕국'이 재방송 중이었다. 이효리가 자신의 반려견 순심이와 마지막 이별을 하는 장면에서 가슴이 북받쳐 올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저녁기도를 할 때면 내 발아래 웅크리고 앉아있던 아이의 빈자리가 허전해서 울컥하고 아이가 먹다가 남긴 요구르트를 치우면서 울적하고 어제는 망고를 먹다가 울어버렸다.

비싼 망고를 몽땅 줄 수 없어서 껍질에 붙어있는 달콤한 과육을 긁어주면 그렇게도 맛나게 받아먹었는데...,


일산과 고양시내 중간쯤의 한적한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렸다. 아카시아 꽃이 길 양편에 눈처럼 하얗게 떨어져 쌓여있다. 서울 근교에 이런 멋진 전원풍경이 있는 줄 몰랐다. 군데군데 예쁜 집들이 보인다. 멀리 마치 유럽의 성처럼 원통형의 이색적인 지붕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서 보니 커다란 저택이었다. 그곳에서 너무나도 귀에 익숙한 소리를 들었다. 이젠 환청까지 들리는 걸까?

내 아이와 똑 닮은 비숑프리제 서 너 마리가 초록 잔디 위에서 힘차게 뛰어놀고 있었다.

강아지 유치원이라는 걸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뭐에 이끌린 듯 나도 모르게 하얀 울타리 담장 안으로 들어갔다. 3초 만에 또 비극의 여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강아지를 키워 본 사람은 안다. 그들도 슬프면 눈물을 흘리고 기쁘면 웃을 줄 안다.

어쩌다가 한 두 마리 영특한 강아지만 하는 행동이 아니라 모든 동물은 서로 교감을 한다. 그렇게 19년을 살았다.

눈빛만 봐도 무얼 원하는지 알았는데 강아지도 노후가 되면서 백내장으로 눈동자가 탁해졌다. 우리의 교감은 청각과 후각으로 대신했다. 나는 그때 강아지도 몇 개의 언어는 구사할 줄 안다는 걸 알았다.

집에 돌아온 날이면 왜 이제야 왔느냐고 짜증 내는 소리,  쓰다듬어 주면 고맙다고 가르랑거리는 소리, 좁은 틈새에 몸이 끼었을 때 급하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

나만 알아듣는 우리 둘 만의 공감적 언어였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하지만 인간의 시계와 다른 시간을 가지고 사는 그들은 이렇게 슬픔을 주고 먼저 떠난다.


랑하는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참 많이 슬펐다. 집안 구석구석에 강아지의 잔영이 남아있어 그때마다 어김없이 눈물이 난다. 울다가 세면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커다란 눈동자에서 그렁그렁 맺혀 떨어지는 이슬방울 같은 눈물은 드라마를 찍는 여배우들에게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미지일 뿐, 실제로 울고 있는 나의 얼굴은 술에 만취한 사람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충혈된 눈, 하도 풀어 재껴서 붉다가 못해 헐은 콧잔등, 붉은 얼굴..., 돈 주고 보래도 싫은 얼굴이었다.

남편은 무슨 죄로 최근에 이런 얼굴을 수없이 바라봐야 했을까?


화가 나서 몹시 격앙되었던 어떤 사람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악마의 모습을 보았노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 세상에서 최고로 불행한 여인의 얼굴을 보았다. 지나가던 불행이 옳다구나 하고 끈적끈적 달라붙을 것만 같았다.

밝은 얼굴엔 밝은 행운이 어두운 얼굴에는 암울한 불행이 따른다고 했다.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 The day of the Dead)을 기반으로 한 미국 애니메이션 판타지 영화 '코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소년 미구엘은 100년 전에 죽은 조상들을 만나면서 "누군가 자신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죽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나의 강아지는 떠났지만 그가 남기고 사랑은 아직도 따뜻하다. 아직 남아있는 따뜻한 온기를 누군가에게 전해줘야 한다. 그것이 나를 떠난 내 아이를 오랫동안 기억하는 일이다.

하지만 강아지를 또 기르시겠어요?라는 말에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너를 잊기 위해 누군가를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손녀 아이가  A4 용지 한 장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하늘나라로 떠난 강아지의 모습을 삽화로 그린 그림이다. 모두 웃고 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면서 슬퍼할 까닭은 없다. 순수한 아이의 그림처럼  웃으면서 그리워 할 수 있는 것도 행복이다. 이젠 울지 않겠다.

나는 오늘 또 하나의 사랑을 배웠다.


손녀가 나에게 그려 준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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