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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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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un 08. 2021

늙은 작가의 몽롱한 이야기

버스는 사당역에서 아홉 시 정각에 출발했다.

차에 오르기 전 체온을 잰 뒤에 넉넉한 버스 안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충청도 증평에 있는 소월 문학관까지 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문단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하루 일정으로 가는 , 오랜만의 외출이다.


일행 중에는 나이 지긋한 선배 문인들도 계셨다. 눈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브런치에 올라온 글이나 읽을까 해서였다.

창 밖으로 초여름 풍경이 상큼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초록의 나뭇잎들이 눈의 피로감을 덜어준다. 핸드폰의 잔글씨보다 창가의 풍경을 바라보는 게 훨씬 좋았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이 새삼스럽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농촌 모습이 이렇게 바뀌었을까. 나란히 줄 맞춰 모내기 해놓은 논만 아니었다면 여행 중에 보았던 유럽의 시골 풍경과 흡사하다. 넓고 푸른 들판, 군데군데 만들어진 공원, 예전의 붉고 푸른 양철지붕 집이 아닌 서양식의 멋진 집들이 눈에  많이 띈다. 쭉 곧게 뻗은 농로는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때였다. 바로 내 뒷 좌석에 앉아있는 두 사람의 나긋나긋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음성의 나이테로는 여든은 훨씬 넘어 보이는 약간 쇤 듯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이야기의 내용은 또렷하게 들렸다.

나는 두 분의 대화를 어쩔 수 없이 엿듣게 되었다.


"김 형, 나는 지금도 꿈에 우리 어머니가 보이면 아이가 돼요, 내가 중학생일 때 어머니를 돕겠다고 신문배달을 했지요 그때 우리 어머니는 계란을 리어카에 싣고 팔러 다녔어요 어느 날인가는 길에서 어머니를 만났지요 내가 리어카를 밀어드리려고 하자 나는 됐으니 어여 빨리 학교에 가라고 하더군요 학교에 가서도 어머니의 힘든 모습이 아른거려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어머니께서 하신 말이 생각났어요 지금 나를 도우려고 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여 나를 도우라고 하신 말씀을요"


"그 시절엔 누구나 다 고생을 했지요 저 역시 부모님을 돕느라 학교에서 돌아오면 논 밭에서 살다시피 했답니다"


분은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젊은 날의 이야기를 아련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이야기는 주로  상대를 김형이라고 부르던 노 작가님이 하고 김형은 "그랬지요" "저도 그래요" 라며 간간히 추임새를 넣어 주며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중에 이미 돌아가신 가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걸로 봐서  들이 살았던 시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꾸준히 이어졌다

신문사 기자로 취직하여 첫 월급봉투를 어머니에게 드렸던 이야기며 교사로 재직했을 때 겪었던 일들, 결혼하여 슬하에 둔 자식들의 이야기까지 나이 든 두 분 수필가는 꿈을 꾸듯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나 역시 두 분의 대화를 들으며 몽롱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놀라운 건 남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나의 모습이다. 두 분의 이야기는 마치 잔잔한 수필은 읽는 것처럼 아름답고 가끔은 달콤하기도 하였다.

나는 버스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들리는 둔탁한 기계소리에 뒷 좌석의 이야기가 묻혀 들리지 않을까 봐 그때마다 귀를 곤두세웠다.


윗 세대 어르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던 때가 언제였을까? 아마 오래전에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가 신세한탄 겸해서 들려주셨던 게 마지막이었을 듯싶다. 창밖으로 스치는 초여름 전원풍경을 바라보며 듣는 늙은 작가의 이야기는 잔잔한 내레이션으로 펼쳐지는 한 폭의 영상을 보는  같았다.


"이제는 애들 걱정은 안 해요 하느님이 부르시면 조용히 그곳으로 가기를 바랄 뿐이죠"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두 분의 대화도 마무리되었다.

두 분의 대화는 자칫 긴 여행에 무료했을 시간을 훌쩍 지나가게 해 주었다.


같은 말이라도 순 우리말의 늙은이라는 표현은 하대하는 느낌이 들뿐만 아니라 왠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늙은 것도 서러운데 늙은이라니...,  노인이나 어르신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하면 한결 부드럽겠지만 나는 오늘 두 분 수필가의 이야기를 엿들으면서 늙음을 재해석하였다.

'늙은'이라는 단어 뒤에 붙는 명사는 그게 뭐든 그 분야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낸 사람이라는 의미가 생긴다.

늙은 아버지, 늙은 선생님, 늙은 작가...,

오래되어 고목이 된 소나무가 마을을 정겹게 감싸고 있는 모습처럼 느껴지는 말이기도 하다.


파란만장한 대 서사시 같은 인생 이야기를 수필처럼 다정하고 온화하게 풀어 나가는 두 , 그 이야기 안에서 이 사회가 어느 한편으로 기울지 않게 무게를 실어주는 묵직한 추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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