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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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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ul 23. 2021

뜻하지 않은 소식

한 사람이 살다가 간 세상 중에 나와 언뜻 스친 시간들이 있습니다.

필명으로 부고를 받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순박한 그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한참을 누굴까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오늘 아침 단체 카톡으로 부고가 뜨고 카톡방의 동인들은 한결같이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었습니다.

돌이켜보니 30여 년 전의 글 동지였습니다.  문학교실에서 이 친구를 만났을 때 고운 모습의 그는 내 옆자리에  앉아서 글에 대한 열정만큼 자신의 글이 따라와 주지 못한다고 하소연했습니다. 두 학기쯤  지났을까 자리에서 보이지 않더니 얼마 후 어느 문학지에 자신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지금껏 소식조차 모르고 지내다가 오늘 아침에야 그의 마지막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식이 부고입니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고 해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갑자기 그와 지낸 짧은 시간들이나마 떠오르게 되고 그가 지었던 미소나 한숨까지 뚜렷하게 생각납니다. 

부고를 받은 날은 하룻 내 우울하고 삶이 무력해집니다.


누구나 한 번은 자신의 삶이 다 했음을 통보하고 떠나는 뜻하지 않은 날을 게 됩니다. 다만 그날이 언제 다가올지 모른 채 오늘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피하기 위해 하늘나라로 떠났다거나 혹은 시 돌아간다는 말로 돌려 말하지만 죽음은 엄연히 우리 곁에 맴돌고 있으며 누구나 그를 외면하려고 애쓰며 살고 있을 뿐입니다.

죽음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면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간혹 죽음을 단순하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래서 자신의 과오를 지우기 위해 혹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귀한 생명을 신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과 정신적 교류가 이어지출발이라고 생각합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의 부고를 받은 날이면 살아있는 사람은 그와 함께 한 시간들을 되살립니다. 그의 삶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평가되어 사는 동안의 잘못과 영광은 저승이 아닌 이승에서 더욱 뚜렷해집니다. 살아있는 이들은 그들의 삶에서 해결의 열쇠를 찾기도 하고 또는 본보기를 삼기도 합니다.


살아있었다면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을 문우의 부고가 오늘 하루 나에게 죽음이란 명제로 다가와서 삶을 다시 일깨우고 있는 것처럼..


올봄 나는 사랑하는 오빠를 잃었습니다. 오빠가 살아 계실 때는 그의 생존이 나에게 커다란 울타리였음을 깨닫지 못했지요, 고작해야 일 년에 두어 번 가족모임에서 만나면 언제나 무뚝뚝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빠의 모습이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의 일원 일 뿐, 그다지 마음 쓰지 않았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하고 헤어지고 나면 그뿐, 서로의 삶에 충실하느라 잊고 살았답니다.

하지만 오빠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지금까지, 나는 하루도 오빠를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웃는 인자한 미소와 투박한 손에서 길러내는 다육이를 나눠주며 섬세하게 일러주던 말들,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의 말이 울림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위인들이 남긴 말이나 고전 , 명작만이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고인들이 살면서 행한 행동과 그들의 삶을 통해 배우고 익힙니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면서 결국 그들처럼 언젠가는 나도 한 장의 부고를 남기고 떠나야 하기에 오늘도 내 삶을 가꾸고 있습니다.


조성아 시인님의 부고를 받은 날, 나는 그동안 소식조차 모르고 지낸  문우님을 추억 속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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