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붉은 지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 김작가 Aug 04. 2021

유난히 아팠던 백신 후기

백신을 맞고 앓았다. 그것도 5일 동안이나, 심한 두통에 시달리면서 예방주사가  이럴진대 정작 코로나에 걸리는 사람은 얼마나 고통이 심할까 생각했다.

우와..., 머리를 쪼아대는 두통이라니, 예방주사의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먼저 주사를 맞은 남편은 멀쩡한데 나는 왜 그럴까,  아마 이 주사는 맞는 사람의 취약점을 공격하는 얍삭한 놈 같다. 평소에도 두통으로 자주 시달리는 나의 체질을 눈치챈 것이다. 허리가 자주 아픈 내 동생은 허리를 공략당했다고 한다.(의학적으로 맞는 말인 줄은 모르겠다)


실은 나는 지난번에 실시한 아스트라제네카 예방주사 대상자였다. 주사를 맞기 전 날 급체를 하여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예약을 취소하고 이번 예약 취소자를 대상으로 한 화이자를 맞았는데 호랑이를 만난 것이다.


나는 운전면허 시험을 볼 때도 그랬다. 나보다 겁이 많은 아래층 새댁도 땄는데 그까짓 거...  결국 몇 번의 도전 끝에 따냈다.

아이를 낳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이 노랗게 보일만큼 아파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보다 씬 가냘프고 약한 여자들도 다 아이를 낳았던데 그까짓 거..., 결국 나도 아이를 나았다.

그런데 왜 이번 백신은 두려운 걸까? 폐렴 백신도 독감백신도 대상포진 백신도 다 거뜬히 맞았는데 유난히 코로나 백신은 두렵다. 0.1%의 확률이 내가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약간의 근육통만 느꼈을 뿐 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다. 유난히 고열로 힘들어했던 올케도 이틀 후에는 멀쩡해지더란다. 그런데 나는 왜! 도대체 왜!  5일씩이나 몸져누워있어야 했냐고요,

타이레놀 두 갑을 비우고도 듣지 않아서 병원 처방약을 먹고 링거를 맞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가 맞은  화이자는 혈전이 생긴 예후 없으니 안심하고 푹 쉬라고 했다.

그  와중에 월간 잡지사 에디터의 원고 청탁 문자를 받았다.

나에게도 언제부턴가 작가 의식이란 게 생겼나 보다. 진통제 효과로 몽롱한 중에도 원고 청탁을 허락하고 글의 맥락을 떠올렸다.


문득  소싯적에 본 내 사주가 생각난다. 나는 만년필을 쥐고 죽을 팔자란다. 뿐만 아니라 며칠 전 꿈에는 하늘나라로 간 우리 세찌를 보았다. 사주와 원고 청탁과 하얀 강아지... 이건 무슨 암시란 말인가,


글의 주제는 '마켓'이었다. 우리 동네 마켓에 관한 이야기를 써달라고 한다. 다행히

그 와중에도 글이 술술 풀린다. 오히려 뭔가에 집중하고 있으려니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어떤 문장가통증을 잊을 정도로 집필에 몰두하였던가? 만년필 대신 자판기를 두드리며 내가 꾼 꿈이 예지몽이라면 마지막 유작이 될지도 모르는 글을 완성했다.

원고 마감 날짜보다 하루 먼저 글을  보냈다.


 이 글은 화이자의 후유증으로 심한 두통을 견뎌내며 졸작이나마 고통 중에 빚어졌습니다. 


에디터님의 답변이 왔다.

졸작이라뇨 수고하셨어요 빨리 나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다행히 나는 정확히 예방주사를 맞은  5일 후, 두통의 고통 속에서 헤어나게 되었고 고통 속에서 쓴 글'연희동과 사러가 마켓은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라는 글은 유작이 되지 않았다.


아이를 낳아본 엄마들은 안다. 지독한 출산의 고통은 왜 그리도 빨리 잊고 둘째 셋째를 거듭 낳는지..., 아이를 기르는 기쁨이 을 때의 고통을 감수해 주기 때문이다.

5일 동안 두통으로 시달리면서 낳은 자식 같은 작품 때문일까, 지독히도 아팠던 통증이 잊히려 한다. 


지금은 두통이 사라지고 언제 아팠냐는 듯이 맑아진 머릿속, 내달 23일에는 2차 접종이 기다리고 있다. 그까짓 코로나 19 백신쯤 이젠 겁나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더울 땐 숲으로 가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