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피네 가족

지난가을 동네 수족관에서 열대어를 사 왔다. 구피는 열대어 중에서도 가장 손쉽게 키울 수 있는 어종이라고 한다.

청보라 색 꼬리를 활짝 펼치고 똘방한 눈알을 떼록떼록 굴리는 모습이 예쁜 수컷과 달리 구피의 암컷은 어느 계곡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민물고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수수한 외모였다. 암 수 한 쌍씩, 모두 네 마리의 구피를 집 안으로 들여놓고 살아서 움직이는 물고기에게서 생동감을 느꼈다.  

내 딴에는 마음에 맞는 커플끼리 각각 짝을 지어 살기를 바라며 유리 어항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는데 물고기도 자기 취향이 있는지 수놈 두 녀석이 유난히 암컷 한 마리에게만 집중해서 귀찮게 따라다녔다.

인기녀와 외톨녀, 두 마리 암컷 구피들은 같은 어항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인기가 너무 많아도 피곤한 법이다. 매번 다가오는 수컷을 피해 도망 다니느라 힘든 인기녀를 위해 나는 커다란 조가비를 어항 속에 넣어 두었다. 인기녀 구피가 잠시라도 피해있을 장소가 필요할 것 같았다.

요즘에 나는 어항 곁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구피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얼마 전부터 암컷 한 마리의 배가 불룩해졌기 때문이다.

구피는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다. 네이버님께 확인을 해보기 전까지는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상어나 고래, 홍어와 가자미가 새끼를 낳는다는 건 알았지만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열대어가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다는 걸 알고 왠지 다른 물고기보다 한 수 위의 생물처럼 느껴졌다.

내 생일날 아침,

다른 날보다 조금 어수선스러웠던 하루였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뒤, 그때에야 구피가 있는 어항을 살폈다.

그런데..., 어항 가득 작은 점들이 꼬물거린다. 구피가 새끼를 낳았다. 갓 태어난 듯한 새끼들이 어쩜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지 셀 수조차 없다. 새끼를 낳은 엄마 구피가 대견해 보였다. 그런데 엄마 구피가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니 조가비 안에서 꼼짝을 하지 않고 있다. 산후 우울증이라도 걸린 걸까?

구피를 기르고 있는 동생이 알려주었다. 구피는 자신이 낳은 새끼를 잡아먹을 수 있으니 새끼를 분리해 두라고 한다.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다고 해서 잠시 인정을 느꼈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알을 낳기 위해 먼바다에서 돌아와 사력을 다하여 알을 낳은 뒤 결국 기진하여 죽어버리는 연어가 아니어서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은 수반에 새끼들을 옮겨 놓았다. 옮기면서 세어보니 모두 열일곱 마리나 된다.

들은 바로는 구피는 한 달에 한 번씩 새끼를 낳아서 나중에는 어항이 포화상태가 되어 기르기가 힘들어진다는데 지금 나는 어쨌든 흐뭇하다.

우연히도 나와 생일이 같은 구피 남매들,  잘 키워서 식구를 늘려야겠다.

오늘도 수놈들은 여전히 암컷 구피의 꽁무니를 줄기차게 따라다니고  있다.

구피가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