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둘기 알을 낳던 날

by 연희동 김작가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울리는 알람, 이제 그 소리도 오늘부터는 제 구실을 잃었다. 어젯밤에 미리 꺼두었어야 할 것을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익숙한 뻐꾸기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려다가 아직 옆 자리에 잠들어 있는 남편을 보고서야 상황을 깨달았다.


이 시간이면 나보다 훨씬 먼저 일어난 남편은 얼굴에 거품을 내며 수염을 깎거나 머리를 말리며 출근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다시 이불속 온기 안에 나를 집어넣으며 잠을 청해 보지만 먹먹해진 눈알이 잠을 밀쳐낸다.

언젠가 일요일인 줄 모르고 평소처럼 일찍 눈을 떴다가 그제야 공휴일이었음을 알고 다시 잠을 청할 때의 느긋함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다.


어제 남편은 정년퇴임을 하였다. 손자 같은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써 준 편지를 한 아름 안고 돌아온 남편은 한동안 자신의 방에 들어가서 나올 줄을 몰랐다. 아이들을 참 좋아한 사람이다. 뒤늦게 교직에 뛰어들어 정년을 맞이할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일을 했다.


IMF로 온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남편은 기업의 중견 간부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로 남편의 회사도 어김없이 감원이라는 대수술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신의 손으로 지금껏 한 식구처럼 지냈던 부서의 직원들을 내보내야 하는 고통을 떠안은 남편은 매일 밤 잠을 설쳤다. 가장 힘이 든 것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대학교에 다니는 자식이 둘 씩이나 있어 형편이 어려운 직원이 있는가 하면 노부부를 모시고 사는 가장도 있다. 남편의 결정은 의외로 간단하였다. 자신도 언젠가는 저들처럼 토사구팽 당하지 않겠느냐며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다.


남편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인생 이모작에 재도전을 하여 그 어렵다는 임용고시에 합격하였다. 땅끝마을 바닷가에 있는 초등학교에 첫 부임을 받은 날, 삼월의 햇빛은 너무나 따뜻했다.


우린 뜻하지 않게 주말부부가 되었다. 기차를 타고 다섯 시간을 달려 남쪽 항구 역에 도착하면 어느새 시골 선생님이 되어버린 남편이 바닷바람에 검게 그을린 얼굴로 웃고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남편에게는 가장 큰 고민거리가 생긴다. 같은 학년의 여선생님과 달리 교실을 꾸미는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며칠을 궁리만 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내가 나섰다. 학창 시절 미화부장을 했던 경험을 되살려 색종이를 오리고 붙여서 교실 뒤 칠판에 작품란을 꾸미고 나면 다음 날 선생님들이 간밤에 우렁각시라도 다녀갔느냐며 놀린다고 했다. 그 후로 해가 바뀔 때마다 새 학기 환경미화는 당연히 내 몫이 되었다.


도시의 아이들과 달리 시골 아이들은 조부모의 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았다. 도시에 나가서 일하는 자식들을 대신하여 손자 손녀를 키우거나 아니면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떠맡은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다. 남편은 이런 아이들에게 더욱 각별했다. 뒤떨어지는 공부는 물론 위생과 청결에 소홀한 아이에게도 정성을 쏟았다. 그중 오랫동안 감지 않아 떡이진 아이의 머리를 감겨주는 일은 내 차지였다. 처음엔 거부하여 도망 다니던 아이가 상큼한 샴푸 향기에 반했는지 나중에는 순순히 나에게 머리를 맡기곤 하였다.


도시학교처럼 왕따 문제로 골치 앓을 일이 없는 시골학교에서 남편은 동료 선생님들에게는 후덕한 아버지가 되고 뒤늦게 교직에 몸담은 탓에 남편보다 연배가 낮은 교장 선생님에게는 껄끄러운 인생의 선배였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는 할아버지처럼 푸근한 선생님이었다.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나는 존경하던 나의 초등학교 산생님을 보는 듯했다.


남편이 출근하지 않는 오늘 아침이 낯설다. 요즘 들어 노후세대를 일컫는 말들이 다양해졌다. 조금 멋지게 시니어라고도 하고 아님 점잖게 노령세대라고 한다. 어떻게 불리든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드라이어 소리와 전동 면도기 소리가 멈추면서 우리의 중년도 함께 멈춰버린 느낌이 들었다.

집에만 있는 남편들에게 거침없이 쏟아지던 유머 시리즈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닌가? 이런 걱정은 나만 하고 있는 것인지 남편은 여전히 해맑은 얼굴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는 모양이다.


"산 비둘기가 아직도 알을 품고 있어요"

"놀라지 않게 교실에서만 바라보아라"


학교 운동장가에 있는 측백나무 위에 산비둘기가 알을 품었는데 그동안 아이들과 그 모습을 관찰하였다고 한다. 비둘기가 부화되어 날아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학교를 떠났지만 선생님이 안 계신 이 아침에도 아이들은 문자로 산비둘기 소식을 전해 주고 있었다.


저들을 보듬고 있던 선생님의 따듯한 체온을 잊지 않고 있는 그들만의 수업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산비둘기 알이 부화되어 하늘로 날아갈 때까지 남편의 정년퇴임은 유보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