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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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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un 12. 2022

줄만 서다 왔지요

참 답답한 노릇이다.

유월 첫 주, 연휴 마지막 날 아침, 속초와 서울 간 상행선 고속도로는  휴일을 즐기고 돌아가는 사람들로 물 샐 틈 없이 빽빽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정말 연휴를 유쾌하게 보낸 것일까? 그렇다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정체쯤

여행의 마지막 게임처럼 이 또한 즐기면 것이다.


이른 아침, 첫 손님으로 입장하여 조식을 서둘러  먹고 나름 일찍 출발하였다.  

처음 고속도로에  진입할 때만 해도 교통은 순조로웠다. 그런데 IC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본선에 합류하는 차들로 주행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이윽고 그대로 길 위에  붙어버린 듯 전혀 움직일 기세가 없는 자동차들.  안에 차라리 내려서 걸어가고 싶은 내가 있다.


연휴 마지막 날의 도로 사정은 안 봐도 뻔하다. 그래서 서둘렀다. 하기야 우리가 아침식사를 하라운지내려가고 있을 때 이미 잠도 덜 깬 어린 아기를 등에 업고 주차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때 아침식사를 포기하고 우리도 그 뒤를 따랐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아마 제시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길이 리기만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겨우 주춤주춤 기어가다 보면  또다시 막히기를 거듭하고 출발한 지 세 시간이 넘었는데 아직도 강원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 많은 차들이 언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될는지, 경차도 중형 세단차도 뚜껑을 열고 가는 멋들어진 외제차도 공평하게 답답한 이 길, 명상도 공상도 밀려둔 브런치 글을 다 읽어도 소용없다. 겹겹이 쌓인 푸른 산등성이의 풍경마저 이젠 지겹기만 하다.


평소라면 벌써 집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터널 속에 갇혀 옴싹 달짝 못하고 앞차의 꽁무니만 바라보고 있자니 답답함이 지루함으로 지루함이 짜증으로 몰려온다.

강원도엔 웬 터널이 이리도 많은고  차창밖으로 산속 풍경이  보이는 곳에서 정체되어 있을 때는 그나마 나았다. 깜깜한 터널 안에서 정체되어 있을 때는 아예 숨통이 막혀오는 듯했다.


그러니 뭐하려고 남들 쉬는 휴일에, 그것도 코로나에서 해방되어 너도나도 용수철 튕기듯 을 떠나는 연휴에 동해안을 왔느냐 말이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황금연휴라지만 은퇴하여 놀고 쉬는 일 밖에 없는 우리 처지는 일 년 365일이 연휴인데 왜 하필 남들과 함께 움직여 이 난관을 겪어야 하는 건지.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뒤로 돌아가 물리고 싶다.

고구마 열개를 그냥 삼킨 듯 답답한 심정으로 막연하게 앉아만 있자니 몸이 꼬이기 시작했다.


직장인들의 사흘 연휴는 꿈같은 휴식의 시간이다. 은퇴자의 연휴는 그날이 그날이지만 특별히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딸네 가족이 속초여행을 계획했다. 그곳에서 물놀이도 하고 바다도 보고 대게랑 회도 사 먹고 오자며 교통체증을 염려하는 나를 설득했다.


마침 오월 한 달 내내 집을 수리하느라 어수선했던 차에  집을 떠나 쉬고 싶었다.


가는 길은 그다지 밀리지 않았다, 비는 오락가락했지만 산등성이에 걸린 구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탈도시의 해방감이 느껴졌다.


점심은 간단하게 순두부로 메뉴를 정하고 순 진짜 원조 순두부 할머니 집으로 갔다. 이른 점심시간인데 줄을 섰다. 유명한 집인데 이럴 수 있지 겨우 차례가 되어 식탁에 앉았다. 줄 서서 기다린 만큼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순두부찌개를 맛볼 수 있었다.

고소한 순 두부가 목으로 살살 넘어가며 오랜 시간 참을성 있게 기다리길 잘했다고 부드럽게 달랜다.


아직 예약된 숙소에 입실을 하기엔 이른 시간이다.  대명항으목적지를 정했다. 항구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대게를 사는 게 좋겠다. 기세 좋게 출발했다. 이게 웬일이람, 도로에 차들이 막혀서 꼼짝을 하지 않는다. 속초시내 길 한복판에서 그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꼭 항구에서만 싱싱한 게를 사란 법은 없지 목적지속초 중앙시장으로 바꾸었다. 아무 곳이나 기회를 봐 유턴을 했다. 이곳 역시 만만하지가 않다. 겨우 주차를 하고 시장 안으로  진입,

시장 안 통로도 발 디딜 곳이 없다. 길게 줄을 서서 앞사람의 뒤 퉁수만 보고 걸어간다.

상인이나 행인이나 그동안의 한풀이를 하듯 물건을 사고 판다.

이곳은 닭강정 박스를 들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뉠 정도다. 모두들 손에  닭강정 박스를 한 개 혹은 두 개씩 들고 있다.


유명한 만*이네 닭강정 집은 겹겹이 줄을 섰다. 줄 서기를 아예 포기하고  옆집의 한가해 보이는  닭강정 집으로 갔다. 카드로 계산하고 나서야  일 보시고 40분 후에 오라고 한다. 미리 돈을 받고 영수증에 대기번호를 적어주니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지하에 있는 어물전으로 내려갔다. 싱싱한 고기들이 수족관 안에서 물을 튕기고 회를 저미는 손이 춤을 춘다. 물고기와 상인들은 각각 다른 축제를 즐기고 있다. 이곳 역시 오늘만 날인 듯 부르는 게 값이다.


서울에서는 키로에 4만 원 호가하는 대게가 이곳에서는 6만 원이라 한다. 산지가 더 비싼 이유가 뭘까? 4만 원도 비싸다고 뒤돌아섰던 내가 대게 마리를 고르고 쪄달라며 호기 있게 말한 이유는 또 뭘까?

그래 오늘만, 이라는 조건부 단서가 붙었기 때문이다.

오늘만이다. 연휴이니까, 관광 지니까, 오랜만에 가족 나들이를 왔으니까, 오늘만 비싼  알면서  사 먹고 불친절한 걸 알면서도 갑자기 쏟아진 많은 손님들에게 부대꼈을 테니라며 눈감아 준다.


지난해, 코로나로 발이 묶여 있을 때,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고속도로도 휑하니 뚫려 있었고 만*이네 닭 강정도 줄 서지 않고 살 수 있었다. 메밀 전을 부치는 아줌마는 지금처럼 한 곳에서 꽁꽁 얼린 메밀전을 무더기로 가져와 프라이팬에서 녹여주는 게 아니라 한국자씩 메밀 국물을 부어 정성스럽게 지짐을 만들어 주었다.

한적한 시장 안에서 드믄드믄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정성스러웠고 물건을 사는 나도  언젠가는 끝이 보이는 날이 오지 않겠냐며 우리 모두 참아내자고 무언의 약속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이 바로 우리 모두가 기다리던 그날이다. 그 첫 번째 맞는 연휴기간인 지금 몇 해동안 한적했던 관광지 상인들에게는 그동안의 공백을 보상받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중요하다. 이 많은 관광객들이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게 하려면 더욱 친절하고 더욱 산지다워야 하며 더욱 진실해야 한다.


속초에서의 2박 3일은 온통 줄만 서다 돌아가는 것 같다.

시내에서, 식당 앞에서, 시장에서, 아이와 함께 간 워터 풀장 앞에서, 지금은 돌아가는 이 길도 끝이 보이지 않는 자동차의 행렬이다.


출발한 지 네 시간 만에 겨우 설악 IC까지 왔다. 이곳에서  남편은 차 머리를 돌려 국도로 진입했다. 거리상으로는 멀지만 드디어 속력이란 걸 낼 수 있었다. 차창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쐬며 국도로 오길 잘했다는 걸 느끼려는 순간,

아, 이곳도  멀리 차들의 긴 꼬리가 보인다.


어쨌든 집에 도착했다.

새벽에 출발하여 오후에 도착한 우리 집, 당분간 내 집을 떠나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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