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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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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y 26. 2022

어디쯤 오고 계세요

환절기

계절과 계절이 바뀌는 순간의 환절기를 심하게 느끼는 때가 있다.

봄에서 여름이 되는 짧은 간은 계절이 바뀌는 걸 의식하지 못하고 훌쩍 지나지만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이 되는 시기에는 하루의 기온도 차이가 심해서 체력이 약한 사람들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우리네 인생도 통틀어 사계절로 나눈다. 평균 나이를 사등분하여 20년을 하나의 계절로 인식하였다. 그런데 최근에 평균 연령이 늘면서 인생의 한 계절도 25년으로 늘었다.

그깟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개인마다 다른 청소년기와 청년 장년 노년의 시기를 맞는 동안 인생의 환절기는 누구라도 겪는다.


니는 지금 가을의 끝자락 어디쯤에 서 있다.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은 애매한 중립의 계절, 요즘  환절기 증후군을 겪고 있다.


그 첫 번째  증상이 나타났다. 뭔가를 자꾸 잊는다.  잘 보관해 두고 보관한 장소를 잊는다. 점점 다람쥐의 두뇌를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혼자서  해결책을 찾았다. 물건을 보관할 때 특별한 장소가 아닌 익숙한 장소에 두기로 했다.


두 번째 증상, 화가 자주 난다. 이를테면 곧 출발하려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저쪽에서 ''잠깐만''을  외치고 들어 온 사람이 ''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을 때 '그럴 수도 있지'라며 유연성 있게 넘어가던 예전과 달리 눈에 선 모습을 입이 말하려 한다.

규범이나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 언어폭력 등,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일뿐 아니라 심지어 지지부진한 우크라이나 전쟁, 그로 인한 물가 상승,  끝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 ,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 등, 건강에 대한 불안감 또한 화와 직결된다.


규범과 도리에 어긋나는 모습이 눈에 보이면  곧이어 비난과 비판의 생각이 이어지고 내면의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 '그러면 너도 별수 없는 꼰대지' 라며 나를 '워워' 달랜다.


오늘 아침, 운동을 하러 가던 중에 문자 하나를 받았다. 


''어디쯤 오고 계세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아뿔싸~~  얼마 전에 약속한 모임 날인 줄을 까마득하게 잊은 채 나는 지금 평소의 루틴대로 룰루랄라 파크골프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차를 돌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차를 돌려서 조금 늦게 참석한다 해도 모임의 성격과 다른 지금의 내 복장의 차림새가 용납이 되지 않는다.

전에는 한여름 반바지 차림새로도 참석했는데 언제부턴가 자리에 따라 차림새에 신경이 쓰였다. 


'점잖치 못 하다 ' 혹은 '점잖은 자리'라는 말은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었다. 보이지 않는 잣대로 원칙을 정하고 남을 의식하며 나를 불편하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나는 체면이 자유로움을 제어하고 있는 걸 느낀다. 증후군의 세 번째 증상이다.



봄과 여름 사이. 서로 스쳐가는 이 계절이 너무 아름답다. 봄 꽃이 떨어지고 꼬투리에 맺힌 열매들을 여름의 태양은 건강하게 키워 낼 것이다. 가끔 소나기도 퍼붓고 천둥도 치겠지. 하지만 물은 낮은대로 흐른다. 흐르고 흘러 대양에 이르는 동안 샘물로 고이고 땅 속의 온갖 뿌리를 적실 것이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대지는 다시 생기를 찾는다.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를 보며 계절과 계절 사이 환절기가 주는 의미를 새롭게 바라본다.  


환절기는 적응기다. 어느 날 갑자기 흰머리가 수북한 할머니가 되지 않는 것처럼 놀라지 않게 천천히 다가오는 늙음이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 일까?


그게 어디이든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가던 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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