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물 폭탄이 터졌다. 폭우가 쏟아진 어젯밤은 마치 전쟁터와도 같았다. 검은 하늘을 찢는 번갯불과 뇌성,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는 뭐든 베어낼 것처럼 강했다. 빛과 소리를 동반한 빗 줄기를 바라보기가 두려웠다. 자연의 힘은 정말 강하고 무섭다.
그뿐만이 아니다
거실 밖에 있는 '수수'(아래층 고양이 이름)의 비어있는 간식 그릇에 금세 물이 차오르는 모습을 보며 뉴스로만 듣던 시간당 100 mm라는 폭우의 기록이 얼마나 빠르게 물이 차오르는 숫자인지 체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밤새도록 빗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오늘 아침 뉴스는 온통 비 소식뿐이었다.
집중적으로 쏟아진 폭우로 강남 일대는 물 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강물이 넘치고 도로가 유실되고 자동차들이 길가에 나 뒹글고 있다. 소중한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있다. 자연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모습이 화면 가득 드러나고 있다.
친구가 단체 카톡에 사진을 올렸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물이 차올라서 차들이 보트가 되어 떠다니는 모습이다. 그때서야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젯밤 구멍 뚫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질 때 우리 집 옥상이 잠시 수영장이 되었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의 양을 배수구의 좁은 홈통이 버거워한 탓이다. 남편이 낙엽 등이 휘말려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덮어 둔 배수구의 그물망을 걷어내자 고여있던 물들이 후루룩 빨려 들어갔다.
그때 잠시 옥상에 홍수가 든 것 말고는 비로 인한 피해는 없었다.
오래된 집들이 많은 우리 동네에 폭우로 인한 피해가 없는 것도 참 다행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순리대로 흘러가는 물의 에너지는 인간을 풍요롭게 하지만 무언가에 막혀서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길을 탈선한 물은 그 힘이 분노로 역류하여 인간을 상하게 한다.
무엇이 물을 성나게 했을까?
인간이 만들어 놓은 도시를 한 순간에 무용지물을 만들어 놓은 이번 비는 100년 만의 폭우였다고 한다. 100년이라는 숫자를 유독 강조하는 건 이번 피해가 인간이 막기 힘든 자연재해였음을 알리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도 나는 왜 자꾸만 비의 편을 들고 싶은 걸까? 빗물의 횡포이기 전에 빗물의 항의라고 말하고 싶다.
자연의 힘은 인간이 막기 힘들다. 막으려고 하니 힘이 든다. 막지 말고 그들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터 줘야 한다.
하나의 도시를 계획하려면 100년 후, 아니 그 이후의 계획까지 세웠어야 한다.
내리던 비가 잠시 소강상태가 되면서 오랜만에 햇살이 비친다.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치미 떼는 하늘, 비 설거지를 하러 뜰로 나갔다.
웬일일까.., 연약한 풀꽃 하나도 제 잎을 떨구지 않고 그대로 있다. 무서운 폭풍우 속에서도 몸 하나 상하지 않고 살아남은 꽃들이 대견하다.
도대체 뭐니? 큰비를 이겨낸 너희들의 작은 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