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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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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Feb 20. 2023

내 이름을 이제야 사랑하게 되었다.

내 이름은 김*숙, 요즘 예능 프로에 나오는 옥순, 영숙. 영자. 현숙, 순자라는 이름 외에 인싸가 아닌 아싸 콘셉인 출연자에게 주어지는 이름이다.


남녀 짝을 맺어주는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에게 왜

전후세대에 태어난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는지 아직도 그 의도를 모르겠다.

어쨌든 누가 봐도 약간은 구시대적인 이름들로 묶인 그룹에 내 이름자가 들어 있다는 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름을 두고 예쁘다는 기준을 두는  뭘까?

내 친구들 중에 예쁜 이름을 가진 친구를 대라면 미영이나 미란이 혜란이 영란이 정도다. 이런 이름도 지금에 와서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이름이 되어버렸지만 아마 이름자에 울림소리인 ㅁ, ㄴ, ㄹ, ㅇ, 이 들어간 음운으로 인해 밝은 소리가 예쁘게 들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금 투박하긴 해도 부끄러울 만큼 내 이름이 싫지는 않았다. 그저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니 숙명처럼 여기고 살았을 뿐이다.


아니다. 조금 흔한 이름이라서 불편한 적은 있었다. 학교에 다닐 때면  같은 반에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가 꼭 한 명은 있기 마련이어서 친구들은 내 이름 앞에  '작은,이나 '큰' 따위의 물건의 질량이나 부피를 셀 때와 같은 단위를 붙여서 이름을 불렀다.

나와 이름이 같은 나의 상대는 항상 나보다 키가 컸던지 이름 앞에는 늘 '작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솔직히 키가 그리 작은 것도 아닌데 몹시 억울했다.


지금껏 내 이름으로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이름 타령이냐고?

한때 서울시내버스마다 대문짝만 한 광고를 붙이고 다녔던 '미선'이에 비하면 내 이름정도 예능프로에서 불려지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엄마의 글과 어울리는 필명을 만들어보세요 올드한 이름 말고 유쾌한 이름으로요, "


새로 출간하는 책의 표지디자인을 상의하다가 아들이 나에게 건넨 말이다


mbti가  Isfj 나에게는 아들의 이 말이 "엄마 이름은 올드해요"라는 의미로 들린다.


내 이름이 뭐 어때서?  인터넷에서 내 이름 석자를 쳐봐라 우리나라 전 대통령 영부인 이름부터 언론인 정치인 예술가등 나와 같은 이름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못나게도 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과 동명이라는 논리를 펴서 내 이름을 피력했다.


"눈치채셨겠지만 내 이름은 정숙입니다"


누구나 태어나면 문신처럼 새기게 되는 이름, 좋든 싫든 부모에게 받은 이름은 소중한 또 하나의 '나'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닮는다. 이름에 담긴 의미대로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름 안에는 그 사람이 태어난 시대의 유형이 들어있고 부모가 바라는 자식의 미래 모습이 담겨 있으며 형제끼리의 유대감도 들어있다.

나와 생로병사를 함께 하는 이름, 이름도 나처럼 늙어가는 건 당연하다.


내 주변에서 지금껏 부르던 이름을 바꾸는 이들이 간혹 있다. 최근 들어 개명의 절차가 간편해진 덕에 자신의 이름을 성형하는 것도 쉬어졌다. 그뿐, 사람은 늙는데 이름만 삥으로 지어도 안 어울리긴 마찬가지다.


설마 개똥이라고 불리는 이름일지언정 그 이름 안에는 자식이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있다.


아버지가 지어준 내 이름. 비록 세월이 흘러 구시대의 유물처럼 불리지만 나는 내 이름이 좋다.

이제야 내 이름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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