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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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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pr 15. 2023

훈수를 사양합니다

"그렇지 그렇게 허리를 써야 돼"

오늘도 어김없는 훈수가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탁구교실에는 젊은 강사님이 각자 5분씩 일대일 강습을 해 주고 나머지 시간은 탁구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단식이나 복식으로 게임을 하며 즐긴. 


탁구는 중학교 시절 롤러 스케이트장 대신 자주 갔던 탁구장에서 처음 접했다.

그 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 탁구 선수권 결승전에서 이에리사 선수가 속한 우리나라 선수들이 단체전에서 기적 같은 우승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탁구붐이 일었고 이에리사 선수를 닮고 싶은 꿈나무들이 많았다.


밀레니 시대가 열리면서 동네마다 주민들의 건강과 취미를 위한 문화센터가 개설되어 누구나 쉽게 운동을 접하게 되었다. 나 역시 정식으로 탁구를 배운 그즈음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휴강으로 잠시 탁구를 하지 못하다가 작년 가을부터 다시 재개되어 요즘 전보다 더욱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한참을 운동에 집중하고 있을 때 누군가 곁에서 훈수를 둔다.


"팔보다 허리를 쓰세요"

"그렇게 하지 말라니깐 "


 자신의 운동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더 신경을 쓰는 이 분은 탁구교실에서도 나이가 지긋한 축에 드는 어르신이시다. 본인 말로 한 때 탁구선수였다고는 하나 특별히 탁구실력이 우월한 것 같지는 않은데 누구든 가르치려고 하니 사림들이 슬슬 피하게 된다.


인생을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삶에 대해  진솔하다. 적어도 옛 어른들은 그랬다. 어른들의 말씀이 곧 책이요 진리였다. 삶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후학에게 가르치는 게 가장 큰 보람으로 여겼다. 그래서 노인 한 명이 돌아가시면 작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도 했다.

하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고 해야 할지 요즘 어른들은 설 곳이 없다. 경험으로 쌓은 앎이 많은 노인들보다 컴퓨터가 더 많은 걸 알고 있고 스포츠 역시 과학화되어 기록을 경신하고 기술을 연마하여 신기록에 도전하는 젊은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전에 내가 배우고 익힐 때는 그것이 최고였으나 지금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게 많다. 

'너 자신을 알라'는 테스 님 말을 기억하며 남을 설득하고 충고하는 일도 음식에 넣는 소금처럼 적당해야 한다.


그나저나 오늘은 어르신께서 훈수 반열에 정점을 찍고 말았다.

그분은 팀을 나누어 복식경기를 하고 있는 우리 곁에서 여전히 훈수를 두고 있었다.

그때 상대가 전이 심한 백핸드 컷을 우리 쪽으로 보냈다. 내가 요행히 그 공을 막아내자  


"역시 내가 가르친 보람이 있군"이라며  손뼉을  치며 큰 소리로 말하다.


헐...   언제부터 내가 그분의 제자가 되었는지 전혀 몰랐다.


가끔은  상식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충고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타인의 앎을 비판하면 안 되는 게 요즘 문화다. 개선의 여지는 본인 생각일 뿐, 서로 갈등의 폭만 넓어질 뿐이다.  


쏜살같이 지나간 라때를 생각하면 나 역시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할 세대다.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윗사람의 말은 잔소리로 치부한다.

럼  소는 누가 키우나?


어른으로서 가르치는 건 존중으로 받아들이지만

어른으로써 가르치려 하면 세대차이의 지름길로 가는 정석이다.


'타산지석'의 깨달음을 얻었으니 그분께 고맙다고 해야 하나?



*로서~(지위나 신분 자격을 의미하는 격조사) *로써~(수단이나 도구를 나타내는 격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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