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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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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pr 08. 2023

비둘기 알을 품다

뜰 안에 봄 손님 한분이 오셨습니다. 요즘 보기 드문  임산부랍니다. 한 분이 아니었어요 부지런한 남편도 함께였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연희동 언덕에  따뜻한 남향집,  통풍이 잘 되는 건  물론이고  처마가 길어서 수맥  완전차단, 이 집주인아줌마가 생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손님에게는  좋은 조건입니다.

손님도 야생 고양이를 무척 싫어한답니다. 주인과 취향이 비슷한 것도 때론 사는데 도움이 되지요.

하지만 착각입니다. 주인아줌마는  산과 들에 핀 야생화 빼곤  모든 야생은 다 싫어합니다. 특히 야생 고양이 다음으로  야생 비둘기를 싫어하지요.

넷?,, 비둘기를 싫어한다고요, 이럴 수가..,., ,

                             

                          

       1인칭 남편 시점    


법적으로 안 될 때는 무단침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아줌마가 싫어하는 건 이런 몰염치한 행동이라는 걸 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답니다, 지금 내 아내는 몸을 풀기 직전이고 가장인 나는 처 자식을 위해 어찌 되었건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됩니다. 주인아줌마의 취향 따위는 제가 알바 아닙니다.

보세요 누군들 저 집을 탐내지 않겠어요? 지붕에서 내려오는 물통을 따라 올라 간 으름나무넝쿨의 얼키설키 엮인 줄기들, 그 사이에  움푹 파인 둥우리, 이거야 말로 배산임수, 아니 으름둥지의 명당 아니겠습니까,

아줌마 눈 감아 주세요 듣자 하니 '연희동 김작가'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신다는데  이야기가 사사로운 글감은 아니지 않습니까, 누구처럼 박씨를 물어 다 줄 여력은 없지만 아줌마가 좋아하는 구독자 몇 명은 물어다 줄 수 있습니다.



       1인칭 아내 시점


여보 이 집주인아줌마 말이에요 이상한 취미를 가졌어요 차라우리가 싫으면 쫓아내든지 할 것이지 자꾸만 사진을 찍더라고요 분명 귀찮게 해서 스스로  이 집에서 나가주길 바라는 걸 거예요  나도 여자인데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찍히는 사진은 정말 싫더라고요.

오늘 아침엔 다짜고짜 남편은 어디 가고 너 혼자 있느냐고 묻더군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여자들끼리는 말이 통하지 않으너희 남편과 담판을 지어야겠어라고 말하는 줄 알았지요

그런데 여보. 우리 집주인아줌마  괜찮은 사람 같아요 글쎄 오늘 아침 우리 둥지 앞에 사식을 넣어두었지 뭡니까, 우리가 좋아하는  다진 소고기에 찹쌀을 불려서 섞어 놓은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덥석 먹지는 않았지만 고소한 냄새로 알 수 있었답니다.

남편도 없이 하루종일 둥지를 지키고 있는 내가 불쌍해 보였나 봐요 사진만 찍어대지 않는다면 꽤 괜찮은 여자인데  내 아랫도리가 찍히는 건  정말 싫어



       전지적 아줌마시점


어쨌든 주인집 여자는 봄손님을 맞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사실 갈등도 많았지만 만삭이 된 배를 안고 찾아온 손님을 내 칠만큼 독한 성격은 못되나 봅니다.

하지만 오래 임대할 생각은 없답니다. 우선 몸을 풀고 나면 그때 생각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주인집 여자의 맘을 움직인 것은 따로 있습니다.

처음 연희동 집에 둥지를 살피러 왔을 때는 분명 부부가 다정하게 함께 왔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아내 혼자 둥지를 지키고 있는 걸 알았답니다.


참, 눈치채셨겠지만  손님은 금슬 좋은 비둘기 부부입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부지런히 넝쿨 위를 오르내리던 부부였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둥지를 튼 이후로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먹이를 날라 주는 남편이 없으니 아내는 온종일 굶고서 알을 품고 있습니다. 마치 박재라도 된 듯 꼼짝하지 않고 있는 둥지 아래에는 떨어진 깃털 두어 개뿐 먹고 버린 배설물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껏, 부부의 금슬로 봐서 남편이 바람이 나서 나간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사고가 생긴 거라고 감했지요 측은지심에 먹이를 사식해 주었지만 그마저 입도 대지 않았더군요


임대인은 임차인의 안전을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쩔수 없이 한집에 살게 된 비둘기의 생태를 알아보았습니다.

비둘기가 알을 품는 주기는 3주일, 암컷과 수컷이 교대로 알을 품는다고  하네요

가 보지 않는 사이에 교대가 이뤄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답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기  


때론 관심이 간섭이 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내 집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비둘기에게 더는 관심을 갖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지  않겠지만 정 따위도 절대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연은 자연의 에서 살다가 자연스럽게 떠나가게 하렵니다. 그들 가족이 과연 임대기간을  잘 지켜줄지 금 걱정은 됩니다만,


나는 요즘 도시의 아파트 단지와 신도시 벌판에 형성되고 있는 타운하우스를 보며 괜한 걱정이 들곤 합니다. 인구가 점점  감소되고  있는데 수년 뒤 저 건물에는 과연 누가 살 것인지, 아마 인간보다 가족이 더 많은 그 무엇이 살게 되지 않을까요

올봄, 그  첫 조짐을 본  듯 한 건 다만  나의 생각이길 바랄 뿐입니다.


비둘기 부부의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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