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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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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pr 06. 2023

 봄날엔 이별이 더 서럽다

축제처럼 봄꽃이 피는 봄날에는 슬픔이란 단어는 잠시  묻어두었으면 좋겠다. 봄날에는 누구네  집 며느리가 그토록 소원하던 아기를 잉태했다는 소식이거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주가 받아쓰기를 곧잘 한다는 시답잖은 자랑이거나 또는 신랑신부 두 사람의 이름으로 보내오는 예쁜 결혼청첩장을 받는 일도 기쁜 일 중에 하나이다.


목련이 떨어지는 날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울음이 묻어있다.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의 부음을 알렸다. 소식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하였다. 친구를 더는 볼 수 없다는 것과  백세시대라는 말에 홀려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삶의 마지막 날이 우리 세대의 둑을 스르르 무너뜨리고 있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새싹이 움트는 봄날에 삶의 마지막을 생각하긴 싫지만 오늘하루는 이별이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그 누군가와 영원히 헤어진다 건 너무나 슬픈 일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할 일이 많았었다. 겨울 동안 창가에 두었던 화분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오늘은 서재를 청소하고 책정리를 하려고 했다. 지금 내 앞에는 잼이 접시와 먹다 남은 우유컵과 빵조각이 담긴 쟁반이 널브러져 있다. 친구의 부음 앞에서 나는 무기력해지고 다.


그를 마지막으로  게 칠 팔 년 전, 고향친구의 딸이 예식을 올리는 결혼식장에서였다.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려고 머리에 염색을 한 내가 무색하리만큼 그는 은회색머리카락을 단정히 묶고 나타났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당당해 보였다. 그때 헤어진 후로 오늘까지 만난 적은 없다. 그저 잘 살고 있겠지라며 무심하게 지내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의 부고가 이렇게 아프게 다가올 줄 몰랐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 중에는 나와 어떤 의미로든 관계를 맺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거미줄처럼 얽힌 관계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다가 더는 만날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났다는 통보를 받은 후로 갑자기 미치도록 보고 싶은 건 뭔가,


봄비가 내린다. 꽃이 지겠다.


나이가 든다는 건 가슴에 수많은 그리움을 품고 사는 일이다. 젖은 꽃잎하나 차마 떠내려  보내지 못하고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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