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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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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y 02. 2023

작은 출판 기념회

아이들이 모두 모였다. 케이크에 켜 둔 촛불을  끄고 사위가 샴페인을 터뜨렸다.

새로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카펫에 거의 이 넘는 샴페인이 쏟아졌지만 개의치 않다.

손녀가 사회자로 나선다.


"오늘은 가족 여러분과 함께 김정숙 작가님의 책 '프로방스에서 쌀팔러 간다' 출판 가족모임을 하겠습니다"


언제 저래 컷노 참 야무지다. 하긴 성당의 어린이 미사에서 차분하게 전례를 담당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저 아이가 제 손녀랍니다.라는 마음의 소리가 터져 나오곤 했었다.


"작가의 남편이신 할아버지의 축사가 있겠습니다"


 작가의 남편님께서는 준비해 둔 것 마냥 축하인사를 해 주었다..


" 함께 여행을 했지만 느끼지 못했던 감성을 이 책을 읽고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뒤이어 한**님의 축사가 이어지겠다고 한다. 나는 아니겠지 히죽이며 웃고 있던 아들이 당황한다. 그 모습이 더 우습다.


"프로방스에서 쌀팔러 갑니다 가 앞으로 시리즈로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웃음기를 거두고 사뭇 진지하게 축하인사를 하는 아들의 말이 마음을 울린다.


다음은 김정숙 작가님의 인사말씀 순서란다. 헛, 갑자기 스럽다. 뭐라 말해야 하나 덕분에 고마웠다고, 이 자리를 마련해 줘서 감사하다고, 평소에 나답지 않게 횡설수설했던 것 같다.

책에 사인을 하고 가족들에게 책을 돌리는 순서를 마치자 우리 사회자님이 다음 순서를 진행한다. 모두들 책을 펼치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한 마디씩 이야기해 달란다. 요 녀석 나를 점점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시간이 너무 좋다. 가족들이 함께 책을 읽는 모습,


정기적으로 가족독서모임을 하는 브런치 작가님이 있다. 그분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난 몹시 부러웠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그림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

귀여운 사회자의 진행에 누구 한 명 거부하지 못하고 책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작지만 알찬 출판가족모임은 나를 감동시키고도 남았다.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공급과잉의 도서시장에서 내 글을 찾아주는 독자에게 작가는 무조건 고마움을 가져도 모자란다.

나의 첫 번째 독자인 내 가족들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책을 읽으며 엄마의 또 다른 이름, 작가로서 내 이야기를 그들은 얼마나 수용할까? 내 글이 내 삶과 부합된다면 그것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는 그들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누구든 세상이 아무리 환호를 해도 내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허무하다. 가족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만군의 독자를 얻은 듯 든든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작은 모임 두 번째



"가님 저희가 곧 달려가겠습니다". 책을 보내 주겠으니 주소를 알려달라는 나에게 부산에서 살고 있는 수수맘은 책을 직접 받으러 오겠다고 한다.


우리의 인연은 헤어지고 나서 더욱 돈독해졌다. 세입자와 집주인으로 만났지만 지금은 세대를 뛰어넘는 친구가 되었고, 고양이 수수를 똑같이 사랑하며 언제나 나를 베스트 작가로 만들어 주는 귀한 독자다.


수수맘이 처음 우리 집에 입주하고 친구들과 입주파티를 하던 날, 화장실 안에 친구가 갇혀있다는 황당한 연락을 받았다. 밖에서 화장실 문의 손잡이를 뜯고 어떻게든 열어보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우리 힘으로는 도무지 열리지가 않았다.

 없이 119에 도움을 청하고 나서야 친구는 풀려날 수 있었다. 소방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의도하지 않은 미러볼을 만들어 번쩍거리고 건장한 소방대원들이 집안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어수선한 파티장이 되었지만 젊음은 이 모든 것조차 파티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파티의 주최자인 수수맘뿐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친구들까지 서로 안부를 묻곤 한다.


그날의 친구와 함께 수수맘이 왔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내 책을 가슴에 소중히 안고...,


우리의 파티는 전날의 소방차 헤드라이트보다 더 강한 불빛으로 시작되었다. 남편이 피워놓은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삼겹살이 익어가고 우리는 국적불문 온갖 술로 마음을 적셨다.


사는 게 별거 아니다. 행복은 작을수록 더 진해진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은 핑곗거리를 만들어 가끔은 이렇게 큰 행복을 낚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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