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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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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ug 06. 2023

꽃차를 마시면  꽃물이 들까

화단 여기저기 오렌지 군단 같은 메리골드 꽃이 피어있다. 살짝 스치기만 하여도 진한 향내가 따라온다.


우리 집에는 내 허락 없이 들어와서 터를 잡고 사는 것들이 많다. 데크가 제 집인 양 온통 발자국  지문을 찍고 다니는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빗살을 지른 처마 밑은 한 낮 무더위를 피해 잠시 시에스타 시간을 갖는 박새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봄에는 으름나무 넝쿨 위에서 비둘기 가족이 터를 잡고 살더니 지금은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메리골드 씨앗이  화분이든 화단이든 텃밭 상자든 흙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싹을 틔워 주황빛 꽃을 피우고 있다.


무엇이든 흔하면 값이 헐하고 귀함이 덜한 대접을 받는 게 경제 원리다. 메리골드 꽃도 자세히 보면 참 예쁘다. 기다란 씨방 위에 오밀조밀 주름잡고 있는 꽃잎과 특히 정열의 오렌지빛깔의 꽃 색깔이 독특하다.  그런데도 그리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건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고 번식을 잘하는 소박성품 때문인 듯하다.


긴 장마 중에 여름 꽃들은 다 삭아서 사라졌는데도 유독 메리골드만이 장마를 견뎌내고 꽃을 피웠다. 메리골드가 우리 집  뜰을 찾아와 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삭막한 화단이 되었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저마다 다른 생태를 지니고 있지만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는 기준에 따라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으로 나뉜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에게는 해로운 종으로 낙인찍히고 인간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성분을 지니거나  행동을 하유익한 종에 속한다.


 메리골드꽃은 다행히 우리  눈에 유익한 루테인이라는 성분을 지니고 있어  사람들의 호감을 산다.  


메리골드 꽃차를 만들어 먹으면 눈이 맑아진다기에.... 꽃을 땄다. 줄기를 꺾어 화병에  꽂아놓는 것과 달리 꽃의 목을 따는 일이 이처럼 안타까운 일인지 몰랐다. 잘못을 저지르는 듯한 약간의 미안함과 고마움 공존하는 야릇한  마음이지만 꽃송이는 금세 작은 소쿠리에 채워졌다.


딴 꽃잎을 뜨거운 김에 살짝 익혀 볕에 내어 말렸더니 향기를 그대로 품은 꽃차가 되었다.


유리잔에 꽃을 띄운다. 은은한 황금빛 물이 천천히 우러난다. 커피와 일반차와 달리 꽃차는 마실 때 마음가짐새가 달랐다.


커피처럼 중독성 있는 땡김으로 마시는 것도 아니고 녹차처럼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 마시는 것도 아니다. 찻 잔위에서 서서히 피어오르는  꽃잎을 보며  찻물이 몸에 스미면 왠지 내 마음 어딘가에 꽃물이 들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뭘까. 이 첫사랑 같은 느낌은...


메리골드 꽃차를 마시면  눈보다 마음이 먼저 맑아지나 보다.


메리골드꽃차를 모든 독자님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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