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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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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Sep 25. 2023

가을하늘 푸르른 날에

손녀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가을 대 운동회  초대장을  보내왔다.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었던 행사가 다시 재개된 것에 대하여 정작 학부모인 아이의 엄마 아빠보다도 조부모인 우리 부부가 더 고무되어 있다. 이번이 초등학교 6학년인 손녀의 어린 시절 마지막 운동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팬데믹이 진행되는 동안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이들은 누가 뭐래도 단체활동을 하는 학생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아직 어린 초등학생들이 나는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친구와 자유로운 대화는 물론 원만한 학교생활도 하지 못했으며.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임시 휴교, 비대면 영상수업등, 듣보잡도 못한 새로운 규정에도 군말 없이 적응하며 잘 버텨 주었기 때문이다.


가을 운동회는 평범한 일상이 되돌아왔음알리는 잔치이며 어려운 고비를 견뎌낸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유난히 파란 하늘 아래 넓은 운동장에서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응원하는 아이들의 함성이 우렁차다.


MZ 세대의 운동회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게 없다. 줄다리기. 콩주머니로 박 터뜨리기, 발 묶고 뛰기, 허들뛰어넘기. 이어 달리기 등, 운동회의 종목은 반세기 전 우리들의 학창 시절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경기 중간에 조부모님들이 참여하는 기가  있고 어머니 줄다리기와 아버지들의 달리기가 있어 학부모들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 마음껏 즐긴다.


청군인 손녀를 따라 우리 청군이 되었다. 마들의  줄다리기에 이어 조부모님들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주머니를 던져서 박을 터트리는 경기다. 아이들이 힘내라고 응원을 한다. 누군가 주머니를 한 개씩 던지지 말고 모아서 한꺼번에 던지면 쉽게 박이 열린다고 알려주었다. 모두들 한 번에 서너 개의 콩주머니를 하늘을 향해 던진다. 몇 개는 바구니에 맞고 더러는 땅에 떨어지고 바구니를 매단 장대를 잡고 서 있는 선생님의 머리를 맞고 떨어지는 콩주머니도 있다. 던지는 사람들도 맞는 사람도 모두 웃는다. 청군의 박이 먼저 터졌다.


허들 경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 중에서 손녀를 찾아냈다. 다섯 개의 허들을 차례로 세워놓은 위를 노루처럼 껑충껑충 잘도 뛴다. 손등에 파란 도장을 찍어 준다. 3등이란다. 순간 어릴 적 내 모습이 스쳐간다. 손등에 적힌 숫자를 엄마에게 보여주려고 자랑스럽게 달려갔던 그날이 엊그제 같다.


6년 전 아이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딸아이를 학교에 보낼 때보다도 더 들떴다. 제 이름자를 스스로 쓰고 구구단을 외우는 모든 것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 옛날 아이의 성적 향상을 위해 조바심을 내던 엄마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건강하게 자라주기만 바라는 할머니의 눈에 손녀는 모든 게 다 예뻐 보일 뿐이다. 아이를 길러본 경험, 그 짬밥의 연륜이 사람을 무던하게 만들었나 보다.


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봄이면 강당에서 합창대회를 하고 가을이면 운동회를 하였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우리를 초청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행사가 정지되었던 지난 3년간의 학교생활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던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은 어른들의 몫, 아이들은 나무처럼 잘 자란다. 마음껏 뛰어놀고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있는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우리의 것을 이어가고 있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문화가 있다는 건 세대 간의 격차를 사라지게 하는 일이다. 가을 운동회하면 떠 오르는 것들, 줄다리기와 발 묶고 뛰기, 공 굴리기, 청군과 백군 대표들의 릴레이에 열광하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면 유난히 파란 가을 하늘이 있었던 것도 오늘과 똑 닮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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