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붉은 지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 김작가 Nov 02. 2023

오빠 단풍이 들었네요

집안의 다섯째로 태어나 위로 오빠를 네 명이나 둔 나는 오빠라는 호칭이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오빠라고 부르는 건 아니다  딱 내 오빠들에게만,  언젠가 사람들로 붐비는 전철 안에서 오빠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작은 목소리로 평소처럼


오빠~~


라고 불렀더니 주변에서 나를 흘깃거린다. 뭐냐, 이 눈빛들은? 오빠를 오빠라고  부른 것뿐인데 갑자기 외도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괜히 묻지 않아도 될 인사를 했다.


"올케 언니는 지금 뭐 하세요?"


그냥 언니라고 해도 될 걸 굳이 올케라는 호칭을 붙였다. 안 듣는 척 핸드폰에 집중한 얼굴에서 의심의 빛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가을날 하루, 친정식구들이 모였다. 모두 열다섯 명, 짝수가 되어야 맞는데 하늘나라로 먼저 간 오빠가 있다.


서해안 너른 갯벌 위에 노을이 붉다.


만남의 장소는 고향과 그리 멀지 않은 변산반도 국립공원이다. 교직에 몸담고 있는 조카의 후원으로 쾌적한 휴양소에서 하루를 내기로 했다. 각지에 살면서 이곳으로 가족들이 도착한 시간이 마침 밀물 때였던지 바닷물이 멀리 물러가고 갯벌에는 조개를 사림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차를 타고 오면서  김제평야 지평선의 넓은 시야가 눈을 시원하 해 주더니 이곳 서해바다에서 가슴이  뚫린듯한 느낌이 든다.


동해안이 푸른 바닷물과 넘실대는 파도, 바위에 부딪히는 물소리, 하얀 모래사장을 걷는 느낌이 좋다면 서해안은 천천히 채우고 느릿느릿 밀려가는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다. 바다의 숨소리를 듣는 일. 여섯 시간마다 한 번씩 들이키고 내쉬는 바다의 허파, 그 숨길 속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물들처럼 우리도 넓은 세상 한 곳에서 살다가 이렇게 만난다


"오빠 노을이  참 예쁘네요 "


"오빠  단풍이 들었어요"


이제 곧 팔순이 되는 큰 오빠와 그 아래 두 살 터울의 오빠들이 내 눈에는 아직도 푸른 소나무처럼 정정하게만 보인다. 


한 세대가 거의 한 세기를 함께 살아오면서 서로 불목 하지 않고 화합하며 살고 있는 것도 행복이다. 부모에게 큰 재산은 물려받지 않았지만 서로 사랑하고 우애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신 게 커다란 재산이다


지금껏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가야 할 날이  우리들,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저마다의 색깔로 물들어 간다.


내소사 경전 앞에 천년수가 있다. 모두들 그 앞에서 소원을 빈다. 대웅전에 계시는 부처님보다 살아있는 나무에게 소원을 비는 게 더 신속한가 보다.


'우리 가족 건승하게 해 주세요 이 모임이 우리 세대에서 그치지 않고 대대로 이어가게 해 주세요 나무 관세음보살...'


저녁식사로 횟집에서 마신 오디주 한 잔에 취한 걸까?


"오빠들 때문에 난 남자친구가 없었어 오빠들이 무서워서 얼씬도 못했대"


괜한 투정도 부려본다.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

아름다운 노을풍경

매거진의 이전글 알아맞혀 보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