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오시기로 한 날, 나는 대문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먼 곳에 사는 동생이 오는 것처럼 반가운데 실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일 년 반만의 만남인데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이 무안하게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 먼저 손을 흔든다.
글은 사람이다. 그래서 글을 읽다 보면 그 글을 쓴 작가의 모습이 투영될 때가 있다.
온라인에서 글로 소통하다가 직접 만났을 때 나의 상상과 비껴간다면 얼마나 실망스러울까? 처음 손님으로 내 집에 온 작가를 만난 날, 역시나 그는 내가 상상한 그림에 색깔만 칠하면 완성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반대로 그도 나를 글과 닮은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은 요즘 걱정이 되는 게 있다. 브런치에 동화를 꾸준히 연재하시던 작가님의 글이 몇 개월 전부터 뚝 끊겼다. 내가 걱정이 되는 건 그분이 연세가 많으시기 때문이다. 글을 읽으며 동화처럼 순수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였다.
아프신 걸까? 아님... 나쁜 생각도 들었다. 서로 얼굴을 모르는 온라인 속의 작가들은 모두 이렇게 만나고 헤어진다. 브런치에서 글로 소통하는 사람들에게 작품은 소식이다. 글이 끊기면 소식도 끊기게 된다. 가뭇없이 사라진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만났다. 그것도 오늘이 두 번째 만남이다. 또 다른 소식의 끈이 생긴 것이다.
서로의 글을 통해 그간의 사정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진 곳은 이제 조금 어떠세요"
"아드님이 갑자기 아파서 얼마나 걱정되셨나요"
글의 연장처럼 서로 안부를 묻는다. 외국에 살다가 잠시 귀국한 중에 만났지만 가까운 옆동네에 사는 친구처럼 느껴진다.
인연이란 우연도 있지만 이렇게 만들어가는 것도 있다. 브런치 작가라는 우연에 용기를 더해 인연이 만들어졌다. 내가 조금만 더 용기를 낸다면 소식이 끊긴 老작가님의 안부를 알 수도 있을 텐데...
내가 꽃을 좋아한다는 것도 아마 글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무겁게 사 들고 온 꽃화분에 물을 주면서 그를 생각한다.
잘 도착했겠지?
내 걱정에 답해주듯 브런치에 그의 글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