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붉은 지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 김작가 Oct 15. 2023

알아맞혀 보세요


이게 뭘까요?


"임산부나 노약자는 조심하세요"라고 뚜껑에 써 둘걸 그랬나 봐요, 저희 집에 임산부는 없지만 노약자는 한분 계시거든요. 저희 남편  말입니다. 그렇게 심신이 허약한지 오늘 알았습니다. 냉장고를 열어 본 남편이 기겁을 하고 문을 도로 닫습니다. 놀란 건 바로 저이지요 식구들 중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남편이 그걸 보고 놀란다는 건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어찌 그걸  모를 수가 있지요, 하긴 나도 올해 처음 보았으니까요


굼벵이 아니냐고요?


남편처럼 여러분도 저 물건이 굼벵이로 보이시나요? 설마 그럴 리가요  동물 아닙니다. 식물입니다.



아하 곰팡이 핀 옥수수였군요


저 그렇게 비위생적인 사람 아닙니다요.



그럼 뭐냐고요 도대체!!


들어는 보셨나요 으름나무라고.... 저희 집에 오래된 으름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매년 봄이면 보랏색 꽃이 피는데 그 향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동네 벌들을 모두 불러 모아 윙윙거리는데 어찌 열매는 맺지 않았습니다.  뒤늦게야 우리 집 으름나무는 자웅한쌍이 아닌 걸 알았답니다.


올봄에 저는 아랫동네에 있는 정원이 넓은 집에서 으름나무 암꽃을 조금 얻어 왔지요 암꽃의 꽃가루를  붓에 묻혀  꽃 수술에  조금씩 발라주었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어요. 하나, 둘, 셋. 넷.... 세다가 잊어버리고  또 세어보다가 잊어버리고, 모두 서른네 개의 열매가 열렸답니다.


올여름 긴 장마 속에서도 잘 견뎌낸 으름은 한 알도 떨어지지 않은 채 고스란히 익었습니다. 초록색 열매가 노랗게 익어 가면서 마침내 저 스스로 가슴을 드러내고  하나씩 하얀 속살을 보여주시작하였습니다. 마치 지퍼가 열린 동전지갑들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 같더군요 그 지퍼 안에는 까만 씨앗들이 송송이 박힌 하얀 과육이 들어 있었답니다.



비밀의 주인공은 바로 저입니다.


여름내 눈으로 보고 즐겼으니 이제 입이 즐거워야 할 차례인가 봐요, 그런데 저 또한 이걸  먹어 본 적이 없는지라 네이버에게 여쭤 봤습니다.


세상에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군요 변비에 특효라네요, 항암작용, 신장지방억제, 구취예방, 또 뮈였더라... 아무튼 먹어서 나쁜 건 없더라고요


전 과육은 그대로 가지에 남겨둔 채 속살만 살짝 건져왔습니다. 맛이 어떠냐고요? 꿀 맛, 아니 잘 익은 바나나 맛입니다. 과즙보다 씨가 더 많지만 으름을 한국의 바나나라고 불리었는지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뱉어 둔 씨앗은 새들이 먹기 좋게 데크  한편에 올려두었답니다.


남편은 그제야 자신도 어렸을 적에 먹어본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도시남자인 줄....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오늘 그중에 토종 한국산 바나나로 불렸던 으름 맛을 알았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폼을 하고 나니 리폼이 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