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일하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샹송은 프랑스 최고의 여가수 에디뜨 피아프가 부른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이란 노래이다. 그 노래를 부를 때면 나는 내 목소리를 버리고 에디트 피아프의 거친 듯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따라 부르려고 노력했었다.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에 있는 홍등가 피갈 거리는 노래의 제목만큼 화려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가수 에디트 피아프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곳이다.
또한 이곳 거리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거쳐간 곳이기도 하다. 마네, 모네, 고흐, 세잔, 피카소 등, 그들은 술과 여자가 있는 이곳에서 창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때론 향락을 즐기기도 했을 것이다.
몽마르트르에 오는 도중에 버스 안에서 지붕 위에 붉은 풍차가 서 있는 물랑 루주를 보았다. 주변의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게 눈에 띄는 풍차는 아이들의 놀이공원에나 있음 직한 동화적인 건물이다. 하지만 이 붉은 풍차야 말로 르네상스 시대 그대로의 모습이다. 물랑 루주의 무대 위에서 추는 캉캉춤이 지금껏 그 맥을 유지하듯이 붉은 풍차도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몽마르트르를 찾는 관광객들이 명승지처럼 찾아가는 카바레 물랑 루주, 프랑스 최고의 가수'에디트 피아프'도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피갈 거리를 향해 내려가는 골목길에는 예쁜 레스토랑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곳도 이른 아침에는 조용하다. 물랑 루주도 밤새워 즐긴 향락에 피곤하였던 듯 문을 걸어 잠그고 늦잠을 자고 있고, 길가 여기저기에 수북하게 떨어진 담배꽁초와 지릿한 오줌 냄새가 어젯밤 환락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문이 닫혀 있는 카페 거리에 늙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노인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이곳에 용병으로 자원하여 왔다는 젊은이와 함께 밤중에 피갈 거리를 걸어 본 적이 있었다.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딸아이와 배낭을 메고 이곳에 왔을 때는 예약해 둔 숙소가 치안이 좋지 않은 18 구역인 몽마르트르 주변이라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새벽에 파리에 도착하여 겨우 민박집을 찾아왔을 때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청년이 우리보다 하루 먼저 숙소에 입주해 있었다. 그는 이곳에 용병으로 자원입대한 군인이라고 했다. 강원도가 고향인 청년을 통해 용병이라는 직업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낯선 나라에서 나이 지긋한 한국 아줌마를 만나는 게 반가웠던지 고향에 사는 자신의 어머니를 보는 듯하다며 친근하게 먼저 다가왔다.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그는 이곳에 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흘 후면 이곳을 떠나 집으로 갈 것이라 한다. 우리 눈에는 멋져 보이는 외인부대가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특히 속이 느글거리는 서양 음식을 먹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는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퇴직금을 고스란히 어머니께 드리고 이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러 왔다고 했다. 강원도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젊은이에게서 왠지 모를 연민이 느껴졌다.
프랑스 육군 소속의 외국인 지원병으로 구성된 정규 부대에 자식이 선택되어 갔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낄 그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직장도 신뢰도 잃은 채 무직의 젊은이로 지내야 할 그의 삶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이제라도 마음을 돌려 부대에 돌아가면 다시 근무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여유로 주어진 사흘 간의 기간 중에 이미 하루는 지났다고 한다. 나와는 무관한 한 청년의 인생에 관한 일인데 왜 그렇게 긴 시간 공을 들여 설득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날 밤 나는 멀리 강원도에서 아들의 성공을 기다리고 있을 청년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공항에서 바로 부대로 왔으므로 에펠탑조차 보지 못했다고 하는 그와 함께 숙소에서 가까운 피갈 거리를 지나 몽마르트르 언덕을 올라갔다. 건장한 청년과 함께 걷는 한밤중의 피갈 거리는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길거리에 앉아 야유를 보내는 흑인 사내들 사이를 덤덤하게 지나가는 우리 모녀와 달리 마네킹처럼 여장을 하고 호객을 하는 여장남자에게 놀라는 건 순박한 용병 청년이었다.
다음 날 부대로 돌아가는 그를 배웅하고 난 뒤, 우리는 다음 여행지로 떠났다.
그날 밤에 본 풍경과는 너무나 다른 이곳의 아침 풍경이다. 물랑 루주를 사이로 건너편 거리에는 쇼핑거리가 형성되어 있었다. 홍등가였던 이곳이 이처럼 근사하게 변했을 줄 몰랐다. 윈도에 걸린 옷들과 가방은 아무렇게 만든 것 같이 보이지만 개성 있는 사람이나 소화해 낼 만큼 멋진 것이었다. 다양한 작품들이 있는 편집숍에는 당장 들어가서 사고 싶은 물건이 많았다.
청소차가 길 옆으로 물을 흘려서 오물들을 씻어내고 있다. 지저분했던 거리가 씻겨져 나가고 거리는 깨끗한 민 낯을 드러내고 있다. 거리의 여인에서 국민가수로 한 여인의 운명을 바꿔 놓은 피갈거리는 지금 사창가에서 명품거리로 자신의 운명을 바꿔 놓고 있는 중이다.
에디트 피아프의 삶은 처절했다. 태어 난 지 두 달 만에 사라진 엄마 대신 알코올 중독자인 외할머니 손을 거쳐 사창가에서 일하는 친할머니와 자라면서 유아시절을 창녀촌에서 보냈다. 142센티 밖에 안 되는 작은 키와 왜소한 몸집은 어린 시절 영향결핍 때문이었다. 15세부터 거리를 방랑하며 노래를 부른 가엾은 여인 '에디트 피아프'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곳이 바로 이곳 피갈 거리이다 '루이 루플 레'라는 나이트클럽 사장에게 길거리 캐스팅이 되어 프랑스 국민가수의 반열에까지 오르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비행기 사고로 잃은 뒤 마약과 술에 중독되어 살다가 47세의 이른 나이에 간암으로 생을 마감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진심 어린 조언으로도 인생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바뀌어진 인생이 모두 장밋빛 인생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나는 누군가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어 준 적이 있는가? 15년 전,이곳에서 만난 용병 청년의 인생이 장밋빛이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