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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시간

by 연희동 김작가

나에게 글은 기도다.

누군가에게 닿아 공감하면 내 기도는 이루어질 것이다. 지난 한 달 사이 나의 일상이 무너지고 달라졌지만 글을 쓰는 시간만은 잠시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남편이 치료받고 있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의 면회시간은 하루에 겨우 20분이다.

나머지

23시간 40분은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불운을 원망하고 두려워하고 울다가 지쳐버린 시간이다. 십만 명 중 한 명이 걸리는 희귀병에 당첨되었으니 나 또한 십만 명중 한 명의 환우가족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심한 스트레스로 두통이 찾아왔고 나까지 무너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의 일이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아픈 친구를 걱정하던 남편이었는데 자신이 저렇게 중환자실에 누워있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남편의 부재가 나를 휘청거리게 한다. 늘 함께 있던

그에게 하듯 말을 하고 보면 내 말은 허공을 맴돌고 집안은 무서운 정적이 흐를 뿐이다.


살면서 뭔가에 지금처럼 절실한 적이 있었던가... 남편이 병원에 있는 동안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가을이라고 해서 잎이 다 지는 건 만은 아니었다. 지난여름 폭염에 녹아버린 다육이 가지에 새 잎이 돋았다.


"걱정 마 나도 이렇게 다시 살아나고 있잖아"


여린 싹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그래 우리 함께 열심히 이겨내자.


병원에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합병증으로 남편을 괴롭혔던 폐렴이 서서히 나아지고 있다 한다. 너무나 기다렸던 기쁜 소식이다.


굳어진 신체와 달리 의식이 뚜렷하여 자신의 상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남편은 저렇듯이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

그런 남편이 존경스럽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남편이 앓고 있는 '길랑바레 증후군'은 나날이 달라지는 병이 아닌 다달이 차도가 보이는 병이라고 한다. 환자가 완전히 회복되기까지 긴 시간을 요하는 병, 이 말은 간병의 중요성을 알리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중대한 일을 간병인에게만 맡기고 의지 할 수는 없다.


나는 남편의 아내가 아닌 남편의 엄마가 되기로 했다. 자식이 아프면 뭔들 못하리...


목에 가래를 뽑는 일(석션)도 해야 되고 시간마다 체위를 바뀌서 열창이 생기는 걸 예방해줘야 한다. 대 소변을 치우는 일은 가장 쉬운 일이다(도대체 간병인이 이 일을 다 하면 간호원은 뭘 하지?)


간호사에게 난생처음 환자의 목에서 가래를 뽑는 석션이라는 걸 배웠다. 가족들도 누군가는 알아두는 게 위기를 대처하는데 용이하다고 한다. 무섭고 두렵지만 겁을 내는 것부터 현실도피다.


남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일 년에서 그 이후까지 본다. 본인의 재활의지에 따라 기간이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오늘 회진을 오신 담당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환자 가족들의 정성이 환자에게 무척 큰 의지를 가져다준다고...


남편의 병은 긴 시간을 요하는 병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우리 가족은 하나가 되었다. '백세시대'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말이 되고 `가족의 건강`이 얼마나 평화로운 뜻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여유는 없지만 글을 쓸 때만은 마음이 평화롭다.


글을 쓰는 이 시간 내가 나를 위로하고 위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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