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사이에 가을과 겨울이 바통을 이어받은 것 같다. 어제까지만 해도 영상의 날씨에 가을 단풍이
아름답더니 새벽에 일어나 보니 온 세상이 하얗다
첫눈치곤 꽤 소담하고 푸짐한 눈이다. 어제저녁에는 비가 내렸다. 분명 가을비라고 여겼다. 아침에 보니 데크 위에 쳐둔 어닝이 눈의 무게에 눌러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 것처럼 늘어져있다.대빗자루로 불룩한 배를 툭툭 쳐 내렸더니 눈덩이가 와르르 쏟아진다. 훅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것들도 저들끼리 모이면 저렇게 무서워지는구나,데크 위로 수북이 떨어진 눈들을 쓸어내며 남편과 함께 커다란 눈토끼를 만들었던 작년 겨울을 생각했다.
우리 집 대문 앞은 벌써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누군가 일찌감치 구청에서 나눠 준 염화칼슘을
뿌려놓은 듯싶다. 내가 할 일이 줄어들었다.
남편에게 첫눈이 왔다고 알려야겠다. 창문 하나 없이 답답한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지내고 어제 입원실로 옮겼다. 넓은 창문이 있는 입원실, 창가에 놓인 침대 위로 서쪽으로 지는 햇빛이 비치자 눈이 부신 듯 두 눈을 찌푸렸다. 오늘은 창문 밖으로 꽃잎처럼 날리는 흰 눈송이를 보여줘야겠다.이사 가는 날 함박눈이 내리면 부자가 된다는 설이 있다. 병동으로 옮긴 날 이렇게 첫눈이 소복이 내렸으니 건강이 회복된다는 좋은 신호로 받아들인다.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 꽃물이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 진대"
올여름 남편친구의 친가가 있는 시골로 여름휴가를 갔을 때. 두 여자는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였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들었는지 두 남자가 말했다.
"자기들만 첫사랑이 이뤄지면 불공평하지 우리도 봉숭아 물 들여 줘"
지금 내 새끼와 약지 손톱 끝에 초승달 같은 꽃물이 아직 남아있다. 남편들의 농담이 새록새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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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오는 오늘, 병원의 입원실에서 나만 바라보고 있는 남자, 야위고 마르고 병든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