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눈에 물들다

by 연희동 김작가

하루사이에 가을과 겨울이 바통을 이어받은 것 같다. 어제까지만 해도 영상의 날씨에 가을 단풍이

아름답더니 새벽에 일어나 보니 온 세상이 하얗다


첫눈치곤 꽤 소담하고 푸짐한 눈이다. 어제저녁에는 비가 내렸다. 분명 가을비라고 여겼다. 아침에 보니 데크 위에 쳐둔 어닝이 눈의 무게에 눌러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 것처럼 늘어져있다. 대빗자루로 불룩한 배를 툭툭 쳐 내렸더니 눈덩이가 와르르 쏟아진다. 훅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것들도 저들끼리 모이면 저렇게 무서워지는구나, 데크 위로 수북이 떨어진 눈들을 쓸어내며 남편과 함께 커다란 눈토끼를 만들었던 작년 겨울을 생각했다.


우리 집 대문 앞은 벌써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누군가 일찌감치 구청에서 나눠 준 염화칼슘을

뿌려놓은 듯싶다. 내가 할 일이 줄어들었다.


남편에게 첫눈이 왔다고 알려야겠다. 창문 하나 없이 답답한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지내고 어제 입원실로 옮겼다. 넓은 창문이 있는 입원실, 창가에 놓인 침대 위로 서쪽으로 지는 햇빛이 비치자 눈이 부신 듯 두 눈을 찌푸렸다. 오늘은 창문 밖으로 꽃잎처럼 날리는 흰 눈송이를 보여줘야겠다. 이사 가는 날 함박눈이 내리면 부자가 된다는 설이 있다. 병동으로 옮긴 날 이렇게 첫눈이 소복이 내렸으니 건강이 회복된다는 좋은 신호로 받아들인다.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 꽃물이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 진대"


올여름 남편친구의 친가가 있는 시골로 여름휴가를 갔을 때. 두 여자는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였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들었는지 두 남자가 말했다.


"자기들만 첫사랑이 이뤄지면 불공평하지 우리도 봉숭아 물 들여 줘"


지금 내 새끼와 약지 손톱 끝에 초승달 같은 꽃물이 아직 남아있다. 남편들의 농담이 새록새록하다.


봉숭아, 꽃물, 첫사랑, 첫눈,


첫눈이 오는 오늘, 병원의 입원실에서 나만 바라보고 있는 남자, 야위고 마르고 병든 남편.

고백하건대 남편은 나의 첫사랑이다.


봉숭아 꽃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