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의 입원실 한쪽 공간에는 휴게실이 있다. 주말이면 면회를 오는 가족들이 이곳에서 환자를 만나 담소를 나눈다. 하지만 평일에는 찾는 이들이 거의 없어 한적하기만 하다.
이곳 휴게실 벽에는 TV가 한 대 걸려있을 뿐 그 흔한 화분하나 놓여있지 않았다. 보는 이도 없는데 저 혼자 켜져 있을 때가 종종 있는 TV는 이곳의 유일한 장식품이다. 휴게실에는 세 명이서 앉을 수 있는 소파가 놓여있기는 하나 제구실을 못한다 가끔 환자의 보호자들이 이곳에서 새우처럼 웅크리고 누워있다가 되돌아가는 것 외엔 찾는 사람이 드믈다.
얼마 전, 휴게실 앞을 지나가다가 오후의 햇살이 깊숙이 침투한 이곳을 보게 되었다. 석양 무렵의 휴게실은 오전의 삭막함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놀라운 건 서쪽으로 난 커다란 창문으로 낮동안에는 공사 중인 빌딩의 어수선한 광경만 보였는데 해 질 녘 노을은 창밖의 흉물까지도 감싸주고 있었다.
저녁 무렵의 노곤한 빛이 가득 채워진 휴게실은 그제야 피곤함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진정한 쉼터로 탈바꿈되었다.
그날 이후로 오후 시간이면 나는 이곳을 자주 찾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해 질 녘이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약자는 건강을 잃은 사람들이다 줄무늬 환자복을 입고 있는 이들에게 창밖으로 보이는 바깥세상은 부러움과 소망의 공간이다. 보조기에 몸을 의지하고 걷는 연습을 하다가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는 환자. 휠체어에 앉아서 무심하게 창밖의 세상을 바라보는 환자, 그들의 소망은 딱 하나 이곳으로 오기 전, 자신들이 지냈던 삶의 공간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한밤에 갑자기 계엄령이 선포되고 난 후부터다. 바깥세상의 불안함이 네모난 TV를 통해 속속들이 전해지고 있다.
사람들이 TV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신경과 입원 환자들은 대부분 수족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다. 자기 발로 걸을 수 있는 환자는 수액을 메단 링거대를 손수 끌고 오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휠체어를 타거나 간병인의 부축을 받으며 휴게실로 나왔다.
목소리조차 잊은 듯 조용하던 사람들이 분노한다.
"갑자기 와 그러는데요 "
심한 경상도 억양의 환자가 링거바늘이 꽂힌 팔을 아랑곳하지 않고 흔들며 흥분한다.
"밖은 많이 춥지요?"
광장에 모여 성토를 하고 있는 군중들이 화면에 보이자 그들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건강을 걱정해야 할 환자들이 나라를 걱정한다. 그토록 소망하던 바깥세상이 갑자기 불어닥친 거센 폭풍으로 혼란스러워졌다
남편이 쓰러지고 지금 까지 우리 가족은 병의 진행 상황을 함께 공유했다.
몸은 비록 와상상태이나 인지능력이 뚜렷한 환자이기에 자신의 병이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치료를 하고 있는지 환자에게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병의 치료뿐 아니라 뉴스를 보고 알게 된 그날의 사건이나 바깥의 날씨에 대하여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혼란한 사태에 대해서는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젊은 딸아이는 나와는 생각이 달랐던가 보다. 아빠의 눈높이에 맞춰 침상 모서리에 아이패드를 올려두고 뉴스를 틀어 놓았다.
남편이 세상을 본다.
위기 속에서 언제나 하나가 되었던 국민들이 분열되고 있는 모습, 여야의 갈등, 이들을 규탄하는 함성, 모순과 부조리가 난무하는 세상을 보고 있다.
남편이 쓰러진 그날, 전문의들의 파업으로 인해 몇 군데 종합병원에서 보이콧을 당하면서 우리는 망할 의료붕괴사태의 피해자가 되었다. 누가 옳고 그른지는 모르지만 고래들의 싸움에 등이 터지는 건 결국 약자들이다.
요즈음 휴게실은 다시 적막이 흐르고 있다. 달라진 것은 이제 TV 앞에서 더는 흥분도 체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론 침묵이 분노보다 더 강한 표현일 수 있다
국가의 위기에 골든타임이 너무 긴 건 아닐까?
오늘도 휴게실 TV는 저 혼자 떠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