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이름, 잊히지 않을 이름, 심요순. 이 말예, 김정분,.. 이 분들 외에도 각자의 이름이 걸린 침상 위에 하루 종일 누워계신 분들이 많았지만 유난히 한 사람의 이름이 아직도 머리에서 맴돈다.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지금까지 내 주변에는 치매를 앓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단지 기억상실로만 여겼던 치매의 증상이 그것 말고도 무척 다양하다는 걸 이제야 알았고 치매는 곁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병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남편이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하는 동안 나는 차선의 준비를 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에 등록을 하고 규정된 240시간의 이론 수업을 마쳤다. 교제 안에 들어있는 낯선 용어들은 마치 초식동물에게 고기를 던져주며 먹으라는 것과 다를 게 없었지만 당장 남편의 간병을 해야 하는 나는 질겨도 삼켜야 했다.
이제 그동안 배운 이론을 직접 현장에서 체험하고 실천해 보는 열흘간의 실습이 남아있다. 강의실에서의 240시간에 비하면 그깟 80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갈 것이라 생각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 열흘동안 내 안에서는 잔잔한 파문이 쉼 없이 일렁거렸고 변죽을 때린 울림은 나의 후반기 삶에 좌표를 바뀌게 만들었다.
국가에서 인정하는 노인의 나이는 65세이다. 국가는 노인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노인성질병을 가진 어르신들에게 요양비를 지급한다. 그런데 질병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다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등으로 6개월 이상의 기간 동안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인정한 어르신들을 심사해서 등급을 주고 지원을 한다. ( 그동안 이론으로 배운 내용이다)
첫날 요양원으로 실습을 갔을 때 그곳이 내가 사는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게 놀라웠다. 두 명의 실습생과 함께 배정받은 6층으로 올라가자 창문 밖으로 내가 자주 다니던 산책길이 보였다. 그동안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는 게 들통난 셈이다.
요순 할머니는 독방을 사용하고 계셨다. 방안에는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대학교 정문 앞에서 찍은 사진이 놓여있었다. 학사모를 쓰고 있는 아들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요순 할머니 곁에 다른 가족은 없었다.
치매 말기 환자인 요순 할머니는 식구들의 얼굴을 잊었다고 한다. 하루 종일 뭐라고 끊밈없이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다.
내 이름은 심요순...
내 이름은 심요순...
오로지 자신의 이름만을 되뇌고 있다. 마지막 인지의 끈을 붙잡고 있는 할머니, 다 잊었지만 자신의 존재만은 잊고 싶지 않은 것일까?
그런데 할머니의 아드님이 면회를 온 날, 할머니의 얼굴이 전에 없이 밝았다. 할머니와 똑 닮은 아드님의 모습은 수심이 가득한데 할머니는
목청이 높아졌다.
'내 이름은 심요순'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모르겠다. 그 모습을 보면서 뭔가 가슴에서 북받쳐 올라왔다. 기억을 잊었다고 단정하는 건 의학적 판단일 뿐, 형상은 잊었을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이의 체온과 음성, 그가 다가올 때 함께 움직이는 공기의 저항은 잊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수 십 년 전에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우리 어머니는 산소 호흡기로 목숨을 연명하고 계셨었다. 의사 선생님도 이제 집으로 모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임종이 다가왔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어느 날 수녀님께서 어머니에게 성사를 주러 오셨다. 나는 어머니의 귀에 대고 나직하게 말했다.
"어머니 수녀님이 기도해 주러 오셨어요"
나만 느낀 걸까. 나는 어머니가 두 손을 가슴으로 모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오늘 나는 심요순 할머니에게서 그때 느꼈던 안간힘을 보았다.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을 절대로 스스로 버리지 않는다. 누구는 그걸 아집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 누구는 미련이라고도 한다. 그렇다 한들 우리는 그걸 지켜줘야 한다.
책상에서 240일의 시간을 보내면서 알지 못했던
것을 이곳 요양원에서 매일매일 깨달아 가고 있다.
이 말예, 김정분 할머니는 같은 방을 쓰고 계셨다. 자기 물건을 또 훔쳐갔다고 다그치는 할매와 안 가져갔다고 억울해하는 할매, 둘은 화투를 치면서도 아웅다웅한다. 하지만 두 분은 어디서나 함께했다. 놀이교실에도 함께 가고 화장실도 꼭 함께 갔다. 두 어르신은 이곳에서 누구보다도 끈끈한 정을 쌓고 계셨다.
이곳에서 아이처럼 살고 있는 이들은 누군가의 부모이고 때론 길잡이였으며 한때 우리의 이웃이었다. 치매는 지위고하는 물론 재산이 많고 적음을 묻지 않고 잘나고 못난 사람 구별 없이 누구에게나 손을 내민다.
치매인구 백만의 시대, 누구나 이 두려움의 숫자 안에 자신이 포함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여행 중에 웅장한 자연 앞에서 점점 작아지는 나를 느낀 것처럼 조용히 거두어 가는 치매라는 무서운 병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을 본다.
이곳에서 열흘동안 무엇을 본 것일까?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
오늘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자격'이라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