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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희망이라고

by 연희동 김작가


봄, 봄이다

울다 웃는 아기처럼 해맑은 봄이다.


봄은 복실한 강아지의 가슴털처럼 보드랍고

새로 돋은 아기의 젖니처럼 신기하며

하염없이 기어가는 배추애벌레의 연두색 잔등이처럼 심쿵하다.

보일 듯 말 듯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는 조바심 나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 같기도 하다.


가을에 땅에 떨어진 풀씨들은 씨앗 속에서 봄날을 꿈꾸고 물오른 가지 끝에 꽃눈이 맺힌다.

올챙이를 해산한 개구리들은 웅덩이를 떠나지 않고

산 비둘기 산까치 멧새들의 보금자리에는 어미새가 알을 품는다.


기다림 속에서 봄을 맞는다.


봄인데....

까만 봄이다

붉은 혓바닥이 봄을 삼킨다. 아귀처럼 집어삼키는 저 주둥이를 보라지, 끝도 없이 이어진 불의 길,

천년 고찰의 기원을 삼키고 태고적부터 일궈놓은 삶을 송두리째 핥아먹는다.


잿더미 속에서 까맣게 탄 봄이 감자처럼 나뒹굴고 있다.


하지만 봄은 봄이다.

타버린 남편의 신경이 다시 움직인 것처럼. 나는 봄을 믿는다. 휩쓸고 지나간 상처에 다시 새 살이 돋아나게 될 것을...

맨 먼저 풀씨가 날아오면 농부는 다시 산을 일굴 것이다. 숯댕이가 된 가지를 치우고 씨앗을 뿌릴 것이다.


봄은 원래 짧지만 어느 계절보다 강하다.

동토의 땅에서도 견디어 냈으니 천길 불 속에서도 살아나 주길...


재투성이 흰둥이가 제 집을 찾아 돌아오듯이 머위, 진달래, 참나리, 쑥과 갈대도 모두 숲으로 돌아올 것이다.


남편의 신경이 타버린 후 처음으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자신의 손으로 코와 입을 더듬는다. 타버린 산야를 어루만지는 농부의 손이 저럴까?


봄이 돌아왔다.

누군가 말했다.

봄은 희망이라고.,.


희망은 우리를 살게 한다

살아야 한다

살아 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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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