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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건 미안한 일이다

by 연희동 김작가

어지러웠다. 시야가 흐려지면서 몸이 점점 아늑해졌다.


"이제 정신이 좀 드시나요?"


아주 먼 곳에서 들렸지만 왠지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안간힘을 썼지만 입술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눈을 떠야겠다.

내 노력이 통했나 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동요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것저것 요구를 하였다.


"왼발을 들어보세요, 오른발을 들어보세요, 어디가 아프세요? 지금 여기가 어디인 줄 기억나세요?" 등...


아침에 갑자기 명치끝이 찌르듯이 아팠다. 며칠 전부터 소화가 되지 않아서 죽을 먹고 있었던 참이었다. 집에 있는 상비약을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다.

늘 다니던 동네병원으로 갔다. 병원 대기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왔다. 간호원이 보니 내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몸이 옆으로 기울더란다.


남편이 입원을 , 갑자기 혼자가 된 나는 모든 게 힘들었다. 빈 둥지 증후군이라고 했던가 집 안이 휑하였고 식탁은 운동장만큼이나 넓어 보였다. 혼자서는 밥을 먹는다기보다 복용한다는 게 맞을 정도로 때가 되면 그냥 삼켰다. 당연히 체중은 줄고 매사에 의욕이 없다. 거기에 온통 정신을 남편에게 쏟고 있으니 신경도 예민해졌다.


처음 한 달 동안은 딸네 집에서 지냈다. 전화벨소리에 깜짝 놀라고 두려움이 엄습하여 자다 깨면 다시 잠들기가 힘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마냥 집을 비워 둘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오늘 아침, 모두가 염려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위경련입니다"


병원으로 출동한 119 소방대원들은 정신을 차린 나를 보고 몇 가지 인적사항만 물어본 뒤 그냥 되돌아갔다. 내 팔에는 링거바늘이 꽂혀있다.


집에 혼자 있다가 쓰러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평소에 건강했던 남편과 달리 나는 자주 병원신세를 졌다. 남편은 그런 나를 걱정했었다. 늘 조심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고목처럼 나를 지탱해 주던 남편이 입원을 한 뒤 5개월 만에 결국 나 또한 무너졌다.


연락을 받고 딸아이가 달려왔다. 아빠 걱정만으로도 힘든 아이에게 나까지 걱정을 보태 주는 것 같아 미안하다. 누구에게라도 피해 주는 삶은 살기 싫은데 진작에 내 건강을 챙기지 못한 자책감이 자꾸만 들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긴 첫날, 남편은 나에게 "미안해"라고 말했다. 지독히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잘 견뎌줘서 고마운데 뭐가 미안하냐고 남편을 위로해 주었지만 이제야 그 마음을 알게 되었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힘들어하고 그들의 시간을 빼앗고 신경을 쓰이게 하는 건 미안한 일이다.


두 아이들이 교대로 들락날락한다. 아빠의 병시중만으로도 힘들고 지칠 텐데 엄마인 나까지 건강을 챙기지 못하고 걱정을 더 해주다니...

작은 노새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지워주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


이렇게 우린 어쩔 수 없이 미안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사진출처: Daum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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