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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빠졌수다

by 연희동 김작가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한 모양이다.

중환자실의 유리창 사이로 애순과 관식이 서로를 바라보는 애절한 눈빛에서 나의 슬픔은 절정을 이루었다.

불과 몇 달 전 남편과 나의 모습이 그대로 드라마 안에서 재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지로 코를 풀어 가면서 눈이 붓도록 울어댔으니 원~ 밖에서 누가 듣기라도 했다면 아마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을 것이다.


최근에 렛플릭스에서 뜨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정주행 하느라 이틀 동안 TV에 폭싹 빠져지냈다.


어찌 보면 전후세대에 태어난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의 이야기지만 그녀의 삶 속에 누구나 공통된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있고 시대의 변화에 동승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들은 마치 우리네 삶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


드라마가 우리네 삶의 모습을 반영하듯이 우리들의 삶 또한 한 편의 드라마처럼 우여곡절을 겪는다. 남편이 대학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을 때 그곳 가족 대기실에서 만난 노인의 말이 생각난다. 그분은 팔순은 족히 넘었을 듯한 할머니셨다. 스무 살 남짓의 손녀가 함께 동행하고 있었다.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는 대기실 안에서는 자기들끼리 조용히 하는 말도 곧잘 들렸다.


"인생은 연극이야 내가 언제 어떤 배역을 만날지 몰라"


혼잣말처럼 하는 그 말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손녀는 듣는 둥 마는 둥인데 곁에서 들려오는 그 말이 나는 무척이나 공감되었다.


나도 이제는 알 것 같다.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어떤 배역을 맡게 될지 모른다. 전에 나는 지나가는 행인 1.2처럼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의 역할을 맡았다면 지금 나의 배역은 환자가 된 남편의 보호자 역할이다. 생전 경험한 적도, 연습을 해 본 적도 없는 역할이지만 최선을 다한다.

내가 맡은 배역에 충실하여 누군가를 감동시키면 훗날 또 다른 배역을 맡게 될지도 모른다. 하얗게 늙어가며 오순도순 사이좋게 지내는 부부의 역할이 주어진다면 해낼 자신이 있다.


드라마에서 애순 역시 또 다른 배역을 맞는다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수고하며 살았던 애순은 뒤늦게 문학소녀였던 자신의 꿈을 이룬다.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사는 노년의 애순은 작가선생님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기쁨이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아 보였다. 평생의 꿈을 이룬 애순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좋아할 남편 관식이 곁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은 동지다. 젊은 시절 고난도 역경도 함께 견뎌내었으니 노년의 안락함도 함께 누리면 바랄 게 없겠지만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난다.


이 드라마를 남편과 함께 봤다면 이렇게 깊게 빠져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단지 드라마가 슬퍼서 울었을까? 그냥 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드라마를 핑계로 실컷 울고 나서인지 카타르시스를 느낀 듯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


매일 저녁 입원실의 소등시간이 되기 전에 남편과 나는 통화로 오늘 하루를 이야기한다.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코맹맹이가 된 마누라를 걱정하는 우리 관식 씨는 오늘도 재활치료를 열심히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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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