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1553-3호 남편
커튼 하나 사이에 있는 3호 방에서 들리는 소리는 항상 데시벨이 높다. 충청도에서 축산업을 한다는 3호 남편은 간병인이 휴가를 떠난 일주일을 메꾸기 위해서 어제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좀 시끄러워도 이해해 주세요"
가방을 들고나가려던 간병인이 뒤돌아서서 나에게 부탁을 하고 떠났다. 아마 바로 이웃인 내가 제일 피해를 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오늘 아침은 3호 남편에게 걸려 온 전화 한 통때문에 시끄러웠다.
"뭣이라고, 다 죽었다고? 젠장 돌아 버리 거었네"
연일 35~6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에 아기돼지들이 상한 어미젖을 먹고 탈이 나서 죽었다고 한다. 살아있는 어미의 몸속에 있는 우유도 계속되는 무더위에는 상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갑자기 3호 남편이 엄마 돼지처럼 가여워 보였다.
3호는 내 병실 바로 옆이다.
공교롭게도 그와 나의 침상은 커튼 칸막이 하나로 나란히 놓여 있는 셈이다, 나는 이 구조가 사실 매우 조심스러웠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속삭이는 소리도 다 들릴만큼 가까운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이 부부는 늘 싸우듯이 대화를 한다.
"젠장, 또 안 먹어, 먹으라고, 먹어야 살지"
"안 먹어 입맛 없어"
"젠장, 굶어 죽을래? 살려고 왔지 죽으려고 왔냐? "
'젠장'이란 말을 추임새로 쓰는 3호 남편과 환자인 부인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마치 허공에서 줄을 타는 줄꾼을 보듯이 아슬아슬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서스펜스가 극도에 닿을 무렵에는 꼭 누군가 등장한다. 간호사나 치료사들은 이런 장면들이 익숙한 듯
"또 사랑싸움 하시네"
라며 은근슬쩍 대화의 물꼬를 다른 방향으로 튼다
"요즘 돼지 한 마리 값은 얼마나 한대유?"
3호 남편과 대화를 하는 사람은 모두 다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하기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말을 한다. '돼지아빠'라는 닉네임이 붙은 3호 남편은 돼지는 키워봐야 사료값도 안 나온다며 금세 울상을 짓는다.
말투는 조금 억세지만 3호 남편은 이 행성에서 유일하게 내게 말을 걸어 준 사람이다. 가끔 집에서 가져온 거라면서 입이 마를 때 먹으면 좋다며 오이도 주고 하더니 오늘은 잘 익은 토마토를 한 개씩 나눠주었다.
꽃을 꽂아 둘 수 없는 이곳에 식탁에 올려 둔 빨간 토마토가 꽃처럼 예쁘다.
이들은 각각 개성은 다르지만 아픈 부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남편들이다. 환자에게는 투박하든 다정하든 누군가 곁에서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더구나 백년해로를 함께하는 남편이 곁에 있다면 그보다 더 든든하고 편안할 수 없다.
화장은 물론 씻지도 않은 맨 얼굴로 투정까지 부리지만 아픈 부인을 위해 반바지를 입고, 크록스를 신고, 3천 마리 돼지들을 두고 와서 불철주야 열심히 간호하는 남편들... 밤새 왜 그토록 심하게 코를 골았는지 알듯도 하다.
행성 1553-1호. 2호, 3호 남편님들
누가 뭐래도 당신들은 이 시대 최고의 남편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