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어린이 날은 있다

by 연희동 김작가

무엇을 사줄까?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뭘까? 어린이 날이 다가오자 초등학생이 된 손녀에게 어떤 선물을 해야 될지 무척 고민이 되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소꿉놀이 장난감이나 인형을 사 주면 좋아했다. 작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어린이 날에는 동화책을 사 주었다. 그런데 장난감을 선물 받았을 때처럼 좋아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제 나이에 맞는 선물을 고르기가 참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주변 친구들은 손자 손녀들에게 어떤 선물을 할까? 뭘 고민하냐며 현금으로 주는 게 가장 좋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용돈을 주는 것도 괜찮은 선물이기는 하겠지만 우리 아이는 아직 돈의 쓰임새를 잘 알지 못한다.

언젠가 무릎이 구멍 난 바지를 곰돌이 얼굴로 예쁘게 고쳐 주었을 때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우리 할머니가 만들어 주었다"라고 친구에게 자랑도 했었다. 그래 뭔가를 만들어 주자,

요즘 책이 어떻게 출판되어 나오는지 궁금해하는 아이에게 책을 직접 만들어 주고 싶었다. 옛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손으로 그리고 쓰고 엮어서 선물로 주면 좋아할 것이다.

아홉 살짜리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과 친한 나에게도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할머니의 향기

***우리 할머니 품에서는 새콤한 냄새가 납니다. 어떤 날은 달콤하고 또 어떤 날은 고소한 냄새가 나기도 하지요,


(새콤한 이야기)


동그란 밥상에 열 명의 식구가 둘러앉으면 자리가 좁았지만 강강술래 하듯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던 그때가 가장 좋았습니다. 열개의 밥그릇과 열개의 숟가락과 열개의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는 마치 군악대의 장단처럼 경쾌하게 들렸답니다.

어린이 날에 우리 어머니는 옥수수 한 바가지를 가지고 뻥튀기 아저씨에게로 갔습니다.

"뻥이요"

뻥튀기 아저씨는 마술사처럼 옥수수 한 되를 금방 옥수수 한 가마니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그릇에 수북이 담아주는 팝콘을 먹는 그 날은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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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한 이야기)


성격이 서로 다른 두 명의 아이는 자라면서 가끔씩 싸울 때도 있었지만 서로 마음이 통 할 때도 많았답니다. 특히 회사에 출근한 아빠를 기다릴때는 유난히 사이가 좋았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나 추운 날에도 둘이는 손을 꼭잡고 아빠를 기다렸습니다. 실은 아빠보다도 아빠가 사들고 오는 과자봉투를 더 기다렸지만요 ,

내일이면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입니다. 나는 큰 아이에게만 신경을 쓰느라 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는 작은 아이는 관심을 두지 못했습니다.

밤늦게 아이가 돌아왔습니다. 밖엔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습니다. 내일 시험 볼 누나를 위해 풀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고 있었다는 아이의 손에는 파랗게 질린 네 잎 클로버가 들려 있었습니다,.


(달콤한 이야기)


오월 어느 날, 딸아이가 결혼을 하였답니다. 나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보다도 더 행복했습니다. 신부와 나는 너무나 환하게 웃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 저 집은 분명 첫 딸을 낳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애벌레처럼 포대기에 동글동글 싸인 첫 손녀를 내 품에 안은 날, 그때부터였습니다, 내 품에서 달콤한 향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



어쨌든 나는 장편 소설 같은 내 이야기를 짧은 동화 한 편으로 완성하였다. 책을 만들 때보다 더 정성을 들여 포장을 하고 손녀에게로 갔다. 손녀는 성당에서 어린이 미사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교리를 마치고 간식까지 먹는 동안 입구에서 기다렸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나를 본 손녀가 달려와서 내 품에 안겼다. 내가 선물을 줄 사이도 없이 성당에서 받은 어린이 날 선물을 나에게 자랑했다. 아이들마다 손에 노랑 선물꾸러미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할머니도 너에게 줄 선물 있는데 집에 가서 풀어 봐”


그 자리에서 선물을 풀어보고 놀라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나타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뒤 딸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 우와~~ 감동이에요 이 책은 언제 만드셨어요?”


내가 만든 동화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건 손녀가 아니라 그의 엄마인 내 딸이었다. 딸아이를 키울 때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정성이다. 내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서른아홉 살 어른 아이에게 조금은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