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오월과 유월의 기록입니다
친구가 사는 나라 영국
20 년 전 정(J)은 어린 세 자녀를 이끌고 영국으로 떠났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그의 결단에 얼떨떨하였지만 한편으론 그의 용기를 부러워하며 박수를 쳐 주었다.
기러기 가족이 된 J는 힘든 타국 생활을 용하게도 잘 견뎌냈다.
20년이 지난 지금, 세 아이 모두 출가를 하였고 J는 영국 시민이 되어 한가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J는 가끔 한국에 들어왔다. 영국 생활을 청산하고 노후를 한국에서 보낼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녀들이 모두 영국에서 자리 잡고 살고 있다 보니 엄마의 손길이 자주 필요했던 것 같다.
J의 초대로 15일간의 영국 여행을 계획한 우리 영미(영국으로 가는 미녀들) 클럽 멤버는 네 명, 모두 30년 지기 글 동지들이다.
히드로 공항 입국장에는 아직 J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전혀 두렵지 않다. 믿음이란 묘하게도 사람을 안정시킨다. 일행은 누구 하나 서두르는 사람이 없이 각자 핸드폰을 꺼내 로밍을 하고 가족들에게 도착 안부를 보내며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J를 느긋하게 기다렸다.
J보다 꽃다발이 먼저 눈에 뜨였다. 이제는 영국 아지매가 다 된 J가 환영 꽃다발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세 여자들의 환호성에 주변의 시선이 잠깐 집중되었다.
J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뉴 몰든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는 반가운 인사가 끊기지 않았다. 한국말로 수다를 떨 수 있는 시간을 무척 기다렸다는 J지만 정작 그에게는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떠들어 대는 세 여자들, 두 명의 Lee와 나, 여행 날짜를 앞두고 병원신세를 져야 했던 박은 우리보다 일주일 늦게 이곳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여자 세 명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소란스러운 여자 네 명을 태우고 달리는 J의 까만 자동차는 지치지도 않고 떠들어대는 우리들의 열정적인 에너지로 달리고 있는 것 같다.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빨간 이층 버스만 봐도 가슴이 설렌다. 역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나라는 가로수도 달랐다. 수 백 년은 됐음직한 마로니에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 신작로와 오월의 장미꽃이 한창인 공원을 지나 카페처럼 예쁜 집들이 있는 마을을 보며 영국이란 나라에 온 걸 실감했다.
의자도 양말을 신는다는 신사의 나라 영국은 그렇게 우리를 맞이하였다.
빨강이층 버스와 공중전화박스가 눈길을 끄는 런던 시내
없는 게 없는 한인 슈퍼에서 팔지 않는 것
아침이 되어 보아야 비로소 여행의 참 맛을 안다. 창문 사이로 내려 꽂히는 햇살과 새들의 지저귐, 무엇보다도 지금껏 내가 맡아보지 못한 낯선 향기가 나를 깨웠다. 신선하면서도 알싸한 샴푸 향기를 온 집 안에 폴폴 날리며 나와 한 방을 사용한 Lee가 욕실에서 나왔다.
어젯밤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지 않은 채 우리는 큰 일 하나를 해치웠다. 바로 J 가족에게 고향의 맛을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뭐니 해도 고향의 맛은 맛깔스러운 김치의 맛이다. 나는 전라도의 구수한 까나리 액젓 속에 고춧가루와 마늘 등, 갖은양념을 넣고 버무린 김치 속을 꽁꽁 묶어서 캐리어 깊숙이 넣어 가지고 왔다. 오랜 해외생활 중에서 그리운 것은 아마 고국의 음식이 아닐까 그중에서도 김치가 가장 그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김치부터 담그기
어느 날 영국의 J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하세요? 마침 김치전을 부치고 있던 중이었다. 아이고 참 맛있겠네요 라며 자기네도 김치가 조금 있기는 한데 아까워서 전은 부쳐먹지 못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기에 나는 이 참에 김치를, 아니 김장을 담가주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곰삭은 까나리 액젓에 마늘과 파 고춧가루 등 갖은 양념을 넣어서 며칠 냉동고에서 꽁꽁 얼렸다. 외국에 사는 딸네 집에 갈 때면 으레 준비해 갖고 가서 김치를 담아 준다는 친구에게 코치를 받은 레시피다.
뉴 몰든의 친구 집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슈퍼에 들러 배추를 샀다. 우리나라처럼 고랭지 포기배추는 없지만 작아도 알차게 포기가 찬 배추를 사서 바로 소금에 절여놓았다. 네 명의 한국 아줌마들의 손맛이 담긴 김치가 완성되었다. 시차에 적응이 안된 여행 첫날밤을 낮처럼 여기며
한밤중에 치르는 거사가 이웃에게 방해될까 봐 웃음소리를 죽여가며 담근 김장김치다. J는 딸네와 아들에게 줄 것을 통에 각각 나눠 냉장고에 넣으며 몹시 행복해했다.
무려 12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왔지만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없다. 영국 시민 J만 연신 하품을 할 뿐, 서울 아줌마들은 아직도 쌩쌩하다.
우리의 여행은 이런 것이었다. 관광도 좋지만 친구에게 고국의 맛을 전해 주고 싶은 게 가장 큰 목적이었다 각자 캐리어를 열자 준비한 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쑥 인절미와 마른 굴비를 비롯하여 각종 건어물과 라면, 깨와 들기름, 참기름 등... 백숙에 넣어 먹을 수 있는 녹두와 엄나무 가지까지 챙겼다.
여행 중에 신을 운동화, 화장품, 모자를 빼고 대신 우리 음식을 그리워 하는 친구에게 줄 토속 음식들로 가득 채운 캐리어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J는 이 곳 한인 슈퍼에도 조금 비쌀 뿐, 없는 게 없는데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느냐고 미안해 한다. 아무리 없는 게 없는 한인 슈퍼지만 딱 하나 없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고소하고 감칠 맛나는 한국인의 정(情)이다.
태어난 곳에서 몇십 년을 묵혀야 곰삭은 맛을 낼 수 있는 정은 이렇게 작은 캐리어에 담아서야 조금씩 나를 수 있는 귀하디 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