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Q: 내 삶에 길잡이 별이 되어 주는 가치단어는 무언가요?

by 믿지


다시 봄이네요. 쩍 마른 검은 나뭇가지에서 작고 연한 초록 잎이 솟아납니다. 힘차게 뻗어 고새 숲을 이루는 작은 것들의 생명력이 몸으로 전해져요. 족히 40년 이상을 경험한 봄인데 이토록 처음 보듯 새로우니 놀랍습니다. 1년 전 갑작스러운 상실과 애도의 과정을 겪으며 삶과 죽음을 묵직한 어떤 것으로 마음에 품게 된 까닭이겠죠.


인간사인걸요. 엄마와는 몸으로 함께 지내지 못했던 시절이 있어요. 아리게 그리운 사람이었습니다. 교복 입은 내 또래 아이를 길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눈물이 멈추지 않아 그대로 주저앉아버리셨다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녀에게도 난 분명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슬픈 기억만 있는 건 아니에요. 의지대로 몸을 움직였던 대학 시절부터는 엄마와 더 가까웠습니다. 짝사랑 고민부터 진로, 연애, 결혼, 출산, 육아 등 생애 주기별 크고 작은 문제를 만날 때마다 현명한 어른으로 곁에 계셨기에 부모의 자리에서 그녀가 희석된 적은 없었습니다.


돌 된 아이를 키우던 2007년에는 도쿄에서 살 비비며 몇 해를 지냈던 적도 있어요. 모자에 보드라운 깃털이 달린 핑크색 잠바였어요. 사 입히자마자 새가 된 듯 날갯짓하며 흙바닥을 뒹굴던 손주가 얼마나 귀여우셨던 걸까요. 백 번도 넘게 나눈 이야기를 또 꺼내실 때면 코앞에서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두 손, 두 발을 크게 쓰며 따라 하셨어요. 다시 우리였던 그때가 엄마에게도 시릴 만큼 행복했던 게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이혼 가정이라는 주홍 글씨가 어린 시절 온몸을 할퀴며 새겨놓은 끈적한 상처에서 문득 외로움, 공허함, 무기력함이 배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실체 없는 그것들이 불현듯 뻗쳐 나와 하얀 밤에 날 가두는 날이면 본대 없는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나는 존재로 사랑받아 본 적이 있는가?" "존재 자체로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인가?" 맞다고, 그렇다고 냅다 붙들고 답을 써내지만, 해답지를 잃어버려 채점할 수 없게 된 학생처럼 늘 안절부절못했어요. 나만 보이는 가슴속 크고 어두운 구멍은 더 깊어졌고요.

그런데, 마침내 답지를 찾았습니다. 코로나19로 먼발치에서 서로 안녕을 빌던 몇 해가 지나고 겨우 하늘길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던 2023년 3월 11일, 별안간 위독하시다는 소식에 급하게 찾은 오사카 병원에서 말이에요.


저산소증으로 의식 저하 상태였던 엄마는 뛰어 들어가며 토해냈던 "엄마!" 그 외마디에 눈도 뜨지 못한 채로 부러질 듯한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셨어요. '어떤' 내가 아닌 '그저' 내가, 내 목소리로 한 일, 내 존재는 한 줄기 빛이 되어 어둠 속 그녀를 흔들어 깨웠고 엄마는 세상에 다시없을 저리게 찬란한 환대를 온몸으로 내보이셨습니다.


3월 15일 오후 4시 50분, 외할아버지께로 날아오르실 때까지 매 순간 경험했던 비통함 역시 생애에 걸쳐 넘치게 받아온 사랑의 반증이라는 것도 깨달았고요. 그제야 사사로운 것은 사사로워지고 본질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형용사도 필요 없었던 거죠. 그저 존재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와 아이들에 비추어봐도 그렇잖아요. 너무 오랫동안 그 사랑을 의심해 온 것 같아 한없이 죄송했어요. 다물어지지 않는 입으로 몽땅 흘러 들어간 눈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안함이었습니다.


3월 19일, 그녀를 깊이 아끼던 이들과 처연하지만, 아름다웠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니 서울은 이미 봄이었어요. 평생 몸은 떨어져 있다는 게 안타까웠는데 그래도 그날 이후 언제나 곁에 계시다는 것만큼은 참 행복합니다. 내가 걷는 길로만 뿌려지는 벚꽃잎으로, 발 옆으로 툭 떨어져 있는 한 조각 따뜻한 볕으로, 곁을 따르는 하얀 나비로, 봄바람을 빌어 손짓하는 진분홍 꽃으로 우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입니다.


또 있어요. 고민에 답보다는 질문을 건네셨던 엄마. 그래서 마루 한켠, 사진과 유품으로 꾸민 추모 공간에 가치단어를 모아 두었지요. 매일 아침 아이들과 하나씩 골라 읽어냅니다. 사춘기로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나이지만 이 의식만큼은 고요하게 지켜주고 있어요. 삶과 죽음이 겹쳐 흐르는, 여전히 함께인 우리의 시간이란 걸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요.


네, 앞으로 며칠간 이런 나와 우리를 읽고 또 써 보려고 해요. 엄마가 건네는 가치단어로 내 안에 일어나는 파동을 바라보다 자연스레 만나는 마음과 생각을 적어 보는 방법으로요. 어떤 순서로 어떤 단어를 만나고 또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지 흥미롭습니다.


바람, 아니 욕심이 있다면 이 글에 닿는 분들도 하루치의 그 단어를 함께 품고 지내시는 거예요. 글 마무리에 슬쩍 담아낼 질문도요. 어떤 장면, 어떤 사람, 어떤 마음을 만나게 되실지 궁금해지네요. 그렇게 조금은 낯설지만, 다정한 우리의 애도 과정을 따로 또 같이 경험해 주시길 바라봅니다.


아침이 기다려져요. 라일락 향이 달콤해 하염없이 걷고 싶은 시원한 봄밤이지만 어서 인사 나누고 잠자리에 들어야겠어요. 모두 밤새 안녕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는 모든 분의 안녕을 온 맘으로 기원하며 첫인사이자 밤 인사를 마칩니다.


Q: 내 삶에 길잡이 별이 되어 주는 가치단어는 무언가요?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