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핌

Q : 보살핌을 받는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by 믿지


보살핌 : 나는 깊이 있게 보며,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 대해 책임이 있음을 진정으로 이해한다. 자아의 주인으로서, 나는 설령 시간이 더 걸리고 내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고 해도 완전히 열린 마음을 가지고 행동한다.
자아의 주인, 브라마쿠마리스



매일 아침, 나와 연이 닿은 단어를 읽어갈 때면 왠지 오묘한 마음이 들어요.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단어를 만나게 될 거라 믿고 있어서 그럴까요? 오늘 단어이자 질문은 보살핌. 몸과 마음에 품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운전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 시절로 쑥 들어가 버렸습니다.


울타리가 없었어요. 전쟁터 같다고 느꼈지요.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그때의 부모님은 사랑했지만, 방법을 몰라 상처 주고 또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보살필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으셨어요. 고로 그 작은 아이가 ‘고통은 홀로 견뎌내야 하는 것이고 세상에 도움을 구할 곳은 없다.’라는 세계관을 가지게 된 건 당연했습니다.


국민학교 친구 여진이는 나에게 잊힌 그 시절의 나를 또렷이 기억해 줍니다.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을 엄마처럼 챙겼다고 말해요. 친구 생일 파티에도 동생을 데려와서는 "손 닦아라, 이리 와라, 저리 가라" 하면서 잔소리도 심했다고 합니다. 온몸으로 부딪히며 깨쳐야 했던 경험들이 아프고 무서웠던 거지요. 형님 된 마음으로 동생을 곁에 두고 가르치려 애썼던 것 같아요. “내가?” 웃어넘기지만, 확실한 건 아이는 부모일 수 없다는 것이에요. 그래서도 안되고요. 맞지 않은 큰 갑옷을 위아래로 입은 채 돌쟁이 아기 기저귀를 가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허둥거리다 초조해 화내버리는 나와 자지러지게 우는 동생이 보이는 듯합니다.


사랑이지만 어울리지 않습니다. 둘 다 가여웠지요. 평생 미안해하셨어요. 바꿔보려 버텨보려 부딪쳐 싸워냈던 시간 동안 방치되었던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렇게 더는 상처를 줄 수 없어 떨어뜨려야 했던 시간에 대한 미안함.


딸이지만 나도 엄마니까요. 어미가 스스로 뒤집어쓴 죄책감에서부터 벗어나는 일은 어쩌면 평생 불가능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하필이면 그 많은 사람 중 엄마에게 전화가 걸린 거예요. 어떤 이유에선지 패딩 잠바 주머니 안에 있던 핸드폰을 잘못 눌렸던 모양입니다. “여보세요?” 몇 번을 대답하고 부르셨지만, 옷 쓸리는 소리만 들리셨을 테지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족히 30분 넘게 통화가 이어져 있었더라고요. 뒤늦게 동생에게 들은 이야기로 엄마는 내내 미안하다 우셨다고 해요. 옷 쓸리는 소리가 나의 하염없는 울음소리로 들리셨고 어린 시절 보살피지 못했음을 원죄로 떠안아 버린 그 죄책감은 어느 때고 그녀를 이렇게 나락으로 내팽개쳐 버렸습니다. 잔인할 정도로 짓궂게.


엄마가 믿으시거나 못 믿으시거나 어쩔 수 없어요. 그녀의 보살핌은 최선이자 최고였습니다. 아이들만 데리고 살아보려 애쓰셨던 시기의 기억 조각이 맞춰지고 나서는 더욱 확신해요. 뿐만 아니지요. 엄마의 보살핌은 상실 이후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져 절절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잘 지내요. 그러다가도 별안간 턱을 빼고 아이처럼 울음을 쏟아내게 되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과 남편이 방에서 나와 안아주어요. 몸을 겹쳐 추위를 피하고 생명을 품는 펭귄들처럼. 그 속에 있다 보면 울음이 잦아들지요. 침잠해 가는 나와 애써 연결하고 끝까지 책임지려는 이들로부터 넘치는 보살핌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아요. 이미 알고 있는 거죠. 엄마는 편견 없이 듣는 사람, 나이와 상관없이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선한 사람이셨기에 내 슬픔의 깊이를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과정이 좋은걸요. 마지막 역시 예외가 없지요. 좋을 수 밖에요. 문득 내 삶을 비추게 돼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게 됩니다. 그러다 ‘어떻게 살 것 인가?’ 하는 심연의 질문을 만나게 돼요. 생애 걸쳐 몸으로 보이신 아름다운 가치와 문화 덕분에 그녀의 삶, 마지막 장면인 죽음 역시도 이렇게 큰 배움의 장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알고 계실 거예요. 그대로 충분하셨다는 것을요. 침상에서 마지막까지 진심으로 전했던 그 말도 분명 다 기억하실 거고요. “하나도 미안해 말아요. 걱정하지 말고.” 분명 그러셔야 합니다.


Q : 보살핌을 받는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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