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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 Mar 02. 2024

성적으로 경쟁시키지 마세요

경쟁은 최악의 동기부여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2달, 혹은 3달 간격으로 학교에서 모의고사 시험을 치렀다. 모의고사가 모두 끝난 오후 4시면 다 같이 모여서는, 나눠주는 답안지와 함께 점수를 매긴다. 동그라미를 슥슥 그리는 펜 소리들, 이걸 왜 틀렸지? 하고 눈을 치켜뜨고 시험지를 보는 한 친구, 100점을 맞았다며 기분 좋아하는 재수없는 반 1등 친구... 점수 매기기가 끝나면 친구들끼리 서로서로 몇 점이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모두가 채점이 끝났을 때 즈음, 담임 선생님이 "채점 안 끝난 사람?"하고 물어보더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우리에게 다시 되물었다. 


“자, 모의고사 360점 이상, 손.”


나랑 점수가 엎치락 뒤치락하며 같은 점수대였던 친구가 이번엔 점수가 잘 나왔는지 번쩍 손을 들었다. 내 점수는 348점. 자연스럽게 나와 그 친구가 비슷한 상위권인 것을 알고 있는, 다른 친구들이 손을 들지 않는 나를 일제히 쳐다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참 당황스러웠다. 우리 학교는 그런 식으로 전체 학생 중, 모의고사 점수가 높은 학생들을 모아 등수별로 야간 자습실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나는 매번 모의고사를 친 후 공개적으로 남과 비교를 당하는 그 순간이 가장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점수를 매길 때 일부러 틀린 문제도 동그라미를 치거나 하며 점수를 조작하기도 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남들 앞에 보이는 그 순간이었다. 1달 뒤 성적표가 나오는 날에는 이미 치른 시험이라 서로 성적에 딱히 관심도 없고, 물어보면 “아, 뭐지? 마킹을 잘못했나?”하고 어물쩍 넘어가버리면 되었다. 




나는 23살로 늦게 재수를 시작한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학원에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누구의 신경도 쓰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50점을 받았으면, 내가 반에서 하위권이라는 것을 자각할 필요도, 좌절할 필요도 없이 다음 시험에 60점을 목표로 공부하면 되었고, 60점을 받았으면 다음엔 80점, 최종 목표를 100점으로 공부하면 되었다. 나보다 3점 높게 53점을 받은 친구 준석이를 의식할 일도 전혀 없었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100점 만을 목표로 하는 어릴 적 받아쓰기를 칠 때의 마인드가 이러한 환경에서 세팅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독학재수반을 등록했던 나는, 함께 사람들과 수업을 듣지 않고 혼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했었기에 누군가에게 말을 걸거나 친해질 이유가 없었다. 4월부터 수능을 치르는 11월까지 7개월 동안, 나는 학원에 있는 학생 중 단 한 명의 사람과도 말을 섞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는 말할 사람이 없고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멍하니 앉아있거나, 부족한 잠을 자곤 했다. 하지만 나는 행복했다. 신경 쓸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외롭진 않았냐고? 연락하는 친한 친구 3명이 있었기에 괜찮았다. 그들은 나의 입시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친구들이었다. 음악할 때 알게 된 친구, 밴드를 같이 하던 형, 그리고 페이스북에서 알게 된 여자애. 고등학교 동창과는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들 중 만약 대학을 먼저 간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더라면, 그 친구의 대학을 넘어서 가야할텐데, 와 같은 압박이 은연 중에 깔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고등학생들의 입시 스트레스는 교실에 앉아 있는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입시의 당사자이며 점수를 비교할 수 있는 상대라는 것이 주된 원인이지 아닐까. 






비교는 기뻐해야 할 당신의 성장과 발전마저 불행하게 만든다. 어느 날, 7월 모의고사를 치른 후 나는 점수를 매기고 6월보다 점수가 많이 올라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다시 복습하자’라고 생각하고, 혹시나 깨끗한 시험지가 없나 학생들이 버려둔 모의고사 용지를 뒤적거렸는데, 


국어 100.

수학 100.

영어 100.


‘뭐야. 이 괴물은?’


모의고사 용지에 보란 듯이 빨간 글씨로 적혀 있던 한 아무개의 점수를 보자 들떴던 기분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물론 대단하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라며 넘어갈 수도 있다. 나랑 점수가 비슷한 친구나 경쟁상대도 아니고 생판 모르는 남이었다. 하지만 자습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자, 힘이 쭉 빠지고 복습하자는 의욕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사실 만약 내가 20살 때 부모님도 못마땅해하시고 나도 아쉬우니 바로 재수를 했다면, 솔직히 지금의 대학에 절대 오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신이 만약 20살이고 수능이 끝난 뒤 바로 재수를 하게 되면, 재수학원에 처음 등원하면서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동창회처럼 유치원 때 알던 친구,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중학교 때 알고 지낸 친구, 나랑 같이 재수하는 지금 고등학교 친구 등의 사람들이 전부 동네 재수학원에 모여 있는 것이다.


결국 학원을 다니며 영어단어라도 볼 수 있는 왔다 갔다 하는 쉬는 시간에는 친해진 친구들과 노가리를 까고, 자면서 체력을 충전할 수 있는 점심시간에도 노가리를 까기 바빠지게 된다. 그 시간이 하루에 2시간씩만 쌓여도 6개월이면 대충 360시간이고, 하루 공부를 10시간씩 한다고 치면 36일의 시간을 날려먹게 된다. 


성공하려면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경쟁이 자극을 준다던지, 아니면 남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는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고 또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모든 일에 있어서 사람들과 관계를 일절 단절하고 폐관수련하듯 절 같은 곳에 가서 하라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도 성공에 있어서 정말 (어쩌면 최고로) 중요하다. 다만,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입시와 수험이라는 분야에 있어서는 흔들리지 않고 ‘그냥 하는’ 마음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을 피해서 골인 지점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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