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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 Mar 11. 2024

서울대생은 죽도록 공부했을까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 대한 착각

사람들이 명문대생을 보고 흔히들 상상하는 착각이 하나 있다. 학창 시절 죽기 살기로 각오를 다지고, 안광을 밝히며 밤새 쏟아지는 졸음을 참고 코피를 흘려가면서 공부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물론 그렇게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낸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소위 '공부자극' 제목의 영상에서 모 인강 강사가 '피를 토하는 자세로 공부하라'라고 이야기한다. 누구는 잠이 오면 허벅지를 펜으로 피가 나도록 찌르면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우연히 돌린 TV 채널에서 채널A에서 방영되는 <티처스>에서 성적을 올리는 친구들을 보고는, 자신의 아들이나 딸이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보며 딴짓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너도 좀 인생을 걸고 공부를 해 봐라."


라고 말하는 학부모도 있을 것이다.


뭔가 다른 세계의 이야기만 같다. 공부를 잘하려면 저 정도는 해야 하는 걸까? 이건 비단 학부모에게뿐만이 아니라 학생이나 지금 한국을 살아가는, 공부뿐만이 아닌 삶을 헤쳐나가는 모든 청춘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문득 내 상태 돌아보게 되고, 열심히 하자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아직도 열심히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기분이 다운되는 것은 덤.


'아, 왜 나는 열심히 안 하고 있을까?'


'내일부터 나도 진짜 갓생 산다'


'목표 100번씩 적기'


'내일부터 미라클 모닝 실천할 거야. 아침에 영어단어도 외우고.'


...


나는 운이 좋게 한국의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대학 동기나 대학 지인은 어떻게 수험생활을 했는지, 어떤 식으로 공부를 했는지 궁금해서 "어떠 한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했냐?"라고 물어보았다.


그들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모두 "죽을 만큼", "미친 듯이 노력해서"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냥 하다 보니까 왔다"


라는,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완전히 예상 밖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도 그랬다. 하다 보니까 서울대학교에 왔기 때문이다.







물론 수험생활 내내 나는 서울대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단지 갈 수 있는 점수를 받게 되면 가겠다는 희망사항 정도였다.


사실 19살부터 22살까지, 4년 간 펜 한번 쥔 적도 없고 책의 글자 하나 읽은 적도 없는 나 자신에게 큰 기대 따위는 없었다. 그냥 점수만 열심히 올리자,라는 생각 정도였다. 심지어 수능 시험을 친 당일도, 불수능이었다는 여론이 들리기도 전, 다음날 대학 모의지원을 하기 전까지도 내 점수로 지금 대학교를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나는 3년간 아르바이트로 하루살이로 연명하며, 수많은 소속사에 보낸 데모앨범에 대한 오지 않는 답신을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지하 작업실의 퀴퀴한 공기와 함께 지내왔다. 그러다가 재수공부를 시작하니,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하루종일 앉아서 인터넷 강의를 보고 문제만 풀면 된다는 사실에 오히려 공부가 즐거울 지경이었다.


나는 이것들이 억지로 해야 하는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국어, 영어, 수학이라는 새로운 것들을 배운다라고 생각했다. 마치 내가 지금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암벽등반을 배우러 간다거나, 재테크에 관심이 생겨 경제학 책들을 읽어보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내 학창 시절을 돌이켜봐도, 흔한 상상처럼 대학 합격에 목을 매달고 공부하는 상위권 친구들은 없었다. 상위권 친구들은 일단 모두 착하고, 항상 여유가 있는 듯했다. 딱히 '나는 무조건 XX대를 갈 거야'라고 입 밖으로 꺼내는 친구도 없었다. 그들은 그냥 좋은 점수를 받고, 그 점수를 유지하거나 혹은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공부를 묵묵히 한다.


피나는 노력이 아니라 피가 나도 즐거운, 혹은 적어도 피가 나더라도 아픔은 느껴지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한다. 피만 나고 노력할 때마다 힘들고 아프다면 어느새 몸도 마음도 지쳐버리고 말 것이다. 정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일 수도 있다. 자녀를 다그쳐서 명문대라는 목표만 맹목적으로 바라보면서 달리게 한다면, 자녀가 스스로 명문대를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더라도 언젠가 지쳐버릴 것이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만 한다.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지. 누굴 위해 공부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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