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이야기(말이란)
예전에 합천 산골에서 노부부가 대구 동산병원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의사에게 “우리 할멈이 많이 아프니 치료 좀 잘해줘요.” 하고 부탁을 했다. 진찰을 마친 의사는 가운 안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처방전을 썼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이 약을 드시면 몸이 좋아질 겁니다.”
몇 주가 지난 뒤 노부부가 다시 병원에 찾아왔다. “의사 양반, 지난번에 안주머니에서 꺼내서 조금 짜준 약을 집에서 달여 먹었는데 아내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그 약을 한 번만 더 지어 주시오.” 의사는 순간 당황했다. ‘안주머니에서 내가 꺼내 준 약이 뭐지?’ 알고 봤더니 그가 안주머니에서 꺼낸 만년필로 적어준 처방전을 할아버지가 약탕기에 넣고 끓여서 할머니께 드시게 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물을 마신 할머니가 건강해졌다는 것이다. 의사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그 약은 너무 비싸고 귀해서 제가 숨겨둔 것이라 두 번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 약은 한 번만 드셔도 병이 나아요. 이제 할머니께서 밥만 잘 챙겨 드시면 더 건강하실 겁니다.” 노부부는 의사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고 집으로 향했다.
처방전을 달여 마시고 병이 나은 것은 약의 효과가 아닌 마음의 효과다. 이와 같이 마음에서부터 병이 나아 건강해졌다고 믿으면 몸이 그대로 반응한다. 마음은 몸을 지배하고 몸에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플라세보 효과라 할 수 있다. placebo effect란 ‘실제 효과가 없는 것도 맹신하는 것으로 효과를 보는 것.
이 내용에 비추어 예전 일이 생각났다. 하루에 여러 병원을 다니며 내 몸이 종합병원이라 할 만큼 몸상태가 최악일 때가 있었다 안과 진료를 끝내고 옆 건물 이비인후과에 갔다. 젊은 원장님이 “어디가 어떻게 불편하세요.”라고 물었다. 왼쪽 코가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하는데 “머리는 상관없고” 으응 말도 다 하기 전에 딱 잘라버리는 싸늘한 이 분위기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말하던 입은 감전된 것처럼 딱 멈췄다. 콧구멍을 들여다본 의사는 밀어내듯 진료 끝 처방전 받아서 나오기까지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병원을 찾아가는 사람이 여간 답답해서 가겠냐고 한마디로 정나미 뚝 떨어지게 매정하게 문진을 했다. 5분, 10분을 횡설수설 중구난방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았다거나 대기환자가 많았다면 말도 않겠다. 입 닥치고 쇄 한 기분으로 아픈 게 죄인가 진료실을 나오면서 참 야박하다. 잠시 몇 마디 들어주면 될 것을 병 고치러 갔다가 병을 더 얻어가는 씁쓸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이 세상에 딱 하나 이병원뿐이라면 모르지만 다시는 이병원 오나 봐라’ 다짐하며 병원문을 나왔다. 어쩌면 그때는 전문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간절했는지도 모른다. 의사를 믿고 갔는데 말재주가 없는 건지 따뜻한 마음이 없는 건지. 거절당한 기분으로 약을 받아오기는 했지만 정나미가 뚝 떨어지게 말하던 그 의사 얼굴을 떠올리면 약을 먹어도 별 효과 없을 것 같았다.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의 징징거리는 하소연을 다 들어야 하니 아무리 전문직이라 하지만 의사도 짜증 날만도 하겠지. 이해는 하면서도 단칼에 잘린 그 상처는 깊었다. 그 이후에도 여러 병원을 순회하며 전전긍긍했으나 비염은 아주 단골이 되어 떨어지지 않았다. 코가 심하게 아프면 머리도 아프다는 걸 살면서 체험하게 되는데 머리는 왜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는지. 그때를 거울삼아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구나. 때때로 다른 사람에게 말 잘 못하여 마음을 다치게 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