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이야기
중년 아줌마 몇몇이 모인 수다방에서 풀어낸 이야기다. 젊을 때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우울에 젖어 있어도 행복한 척한다. 자존심 상해서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내놓고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되면 겁나는 것도 없고 손해 볼일도 없으니 쌓인 스트레스는 수다로 떨어낸다. 그렇게라도 풀어야 숨 쉬고 살 것 같으니 입을 열기 시작한다.
젊을 때 할 말 못 하고 기죽어 살던 입담이 금메달감인 친구의 인생이야기. ”남자는 쉰 살을 넘으면 서서히 풀이 죽는다는데 그때를 기다리며 살아왔다 “ 불같이 급한 성격에 굵은 목소리로 불호령 치는 오십 대 중반을 넘긴 범상의 남자는 변함이 없다. 아직도 무거운 돌을 번쩍번쩍 들어 나르는 힘센 장사이니 전혀 기죽을 기색이 없다. 예순이 지나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까.
젊을 때나 중년이 된 지금이나 범상 아저씨는 새벽 네 시만 되면 일어나 옆사람이 곤하게 자든 말든 불을 환하게 켜 버린다. 밝은 불빛에 놀라 잠이 깨지만 죽은 듯이 꼼짝 않고 누워 있으면 툭툭 두들겨 깨우는 놀부 심보는 말릴 수가 없다. “미야 엄마 신문 가지고 오너라.”라고 꼭두새벽부터 명령이 떨어진다. 할 수없이 일어나 마당 끝에 있는 신문을 가져오는 것으로 하루 일과는 시작된다.
인상을 쓴다거나 짜증을 내면 동네가 시끄럽고 민망해서 못 산다고.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겠냐”라며 조용히 넘어간다. 일찍 깬 남자가 신문 가지러 갈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속옷 차림이기 때문이다. 옷을 갈아입자니 귀찮고 그냥 마당 끝까지 나가자니 민망하고 내 편하자고 옆사람을 툭툭 쳐서 깨우는 것이다. 순전히 자기 위주로만 살아가는 지배형 사람이다.
옛날 동네라 옆집 앞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사생활 보호가 어렵기 때문에 마당 끝까지 벌거벗은 몸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불안 공포증인지 혹시라도 잠자는 사이에 도둑이 들어와도 빨리 도망갈 수 있는 자세로 잠자리에 든다는 친구. 민망하지 않을 차림으로 잠을 자는 아내를 깨우는 게 더 쉬운 것이다.
삼십 년 동안 호된 시집살이를 했으니 입만 열면 시집살이 고생한 이야기가 자동발사된다. 스트레스 팍팍 받은 내용에 자신이 체험한 고생담이지만 옛날이야기처럼 전해진다. 감칠맛 나게 풀어내는 입담이 보배다. 듣는 이들을 웃게 하고 즐겁게 하는 매력이 있다.
새댁 시절 시집이라고 와보니 “해병대 사령관 같은 시어머니, 해병대 교관 같은 남편에 시동생” 우악스럽게 생긴 가족들이 얼마나 과격하게 행동하는지 정신이 들어갔다 나갔다 할 지경이었다. 시어머님은 며느리가 잠시라도 쉬는 꼴을 못 보는 성격이라 아이 젖먹이고 앉아 있어도 화가 치솟는다. 죄 없는 세숫대야가 발길에 차여 마당 끝에 떨어진다. 상차림이 맘에 안 들면 밥상이 통째로 뒤집어진다. 시어머님이 해도 해도 너무한데 남편조차도 시어머님 성격을 물려받아 성격이 개떡 같다. 식구들 이리 보고 저리보고 다 돌아봐도 마음 둘 곳이 없는 집구석이다. 그중에 단 한 사람 시아버지만이 믿을만했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고 못된 사람들뿐인 그 집에서도 오직 시아버지는 점잖은 분이었다. 시아버지 인품에 위안받고 시집살이 중이었다. 오죽했으면 이웃 할머니가 애가 타서 어린것 안고 있는 새댁 귀에다 대고
“새댁아, 새댁아, 아 내버리고 가 버리라”
“아이고 할머님, 이 어린것은 어찌합니까”
“부모 잘 못 만나 이 아이 사회에서 문제아 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집니까?”
“할머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죽어도 제가 죽지요.”
그렇게 숨 한번 제대로 못 쉬고
“원수를 사랑하라”
“미워도 다시 한번을”
번갈아 외우고 되씹으며 원수 1,2,3, 을 사랑하며
살기로 거듭거듭 마음을 다졌다.
대우받지 못하면서도 참고 견디며 베푸는 삶을 사는데도 원수 1,2,3은 변함없이 자기들 기질대로만 살았다. 발의 때만큼도 대접해 주지 않는 것에 속이 확 뒤집어진 어느 날
“남들이 잘 먹는 술, 나라고 못 먹을 것 있나 나도 한 번 먹어 보자.”
식구들이 외출한 사이 혼자 뒷방에 앉아 소주를 한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술이 취했다. 감히 두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볼 수 없었던 식구들이 돌아왔을 때. 호랑이 같고 사자 같은 시어머니, 시아버지, 남편, 시동생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야, 너희들 다 이리 와 “
겁 없이 고함을 지르고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 무서운 시집식구들 다 밖으로 피해 버리고 아무도 대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맨 정신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고 혼자 울다 잠이 들었다. 그 이후로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운지 더 고개가 숙여졌다. 시댁 식구 그 누구도 지금까지 그 예기는 입 밖에도 내지 않는 것이 더 웃기는 일이다.
점잖으신 시아버지는 입장이 난처하여 시어머니 편도 며느리 편도 못 들고 이쪽, 저쪽 눈치 보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늘 먹물과 붓을 친구 삼아 글을 쓰면서 마음 수양을 했다.
별난 가족 사이에서 며느리의 고생하는 모습을 다 알고 계신 시아버지. 얼마나 애태우며 고생하셨으면 늘그막엔 암이 발병하여 온몸에 전이되어 병 발견 후 이십일 만에 돌아가셨다. 손 쓸 겨를도 없이 시아버님이 떠나 신후 허전한 이 집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아이고 나는 이제 죽었다.”
“어떻게 살아가나.”
너무 힘들고 슬퍼서 많이 울었다. 시아버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참을 인(忍) 자 써 놓은 것이 온 집안 도배할 만큼 많이 쌓여 있었다. 그걸 보니 “아버님도 마음고생 참 많이 하셨군요.” 눈물 펑펑 쏟으며 한풀이하듯 엉엉 울었다.
시아버지 안 계시면 하루도 못 살 것 같았는데 그래도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시어머님도 그 뒤 뇌졸중으로 삼 년을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그렇게 시집살이 힘들게 시켰는데도 병들어 누워있다 돌아가시니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잘 못 해 드린 것들만 생각나고 이 땅에서 다시 볼 수 없다 생각하니 해병대 사령관 같던 시어머님도 보고 싶어 질 때가 있다고 한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어른 두 분 다 돌아가셨기에 이제는 해방인가 싶었는데 때때로 남편을 보면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다시 살아오신 것 같다. 어쩜 그렇게 똑같은지 깜짝깜짝 놀란다. 저 원수를 어쩌나! 이제까지 어른들 눈치 보느라 비위 다 맞추며 살았는데. 이제 와서 고치자고 부딪치면 부러지고 말 텐데 건드릴 수도 없고 어쩔 방법이 없다.
“마 이제 조금만 더 살다 가면 되지 뭐”
중년이 되어도 자신을 내세울 수 없는 평생 시집살이 고생 담. 힘들었던 이야기를 얼마나 맛깔나게 풀어내는지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해 주었다. 고생은 했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아들 딸 잘 키워서 행복한 가정으로 잘 세워 온 것이다.
호된 시집살이와 치열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편 한 사람에게 찌그러져 살아온 시집살이 정도는 이야깃거리도 안된다. 모두 위로받으며 앞으로 더 잘 살아보자. 너 나 할 것 없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럴 이유가 있지. 앞으로 살아가는 날 동안 배나 행복하게 잘 살자. 꼭꼭 약속하며 모두 손잡고 한바탕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