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때는 큰 물에서 놀았다

멸치의 하소연

by 수국

작아서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것인지

작아서 한입거리도 안된다는 것인지

그래서 살려 두겠다는 것인지

잡아먹겠다는 것인지 큰 녀석들의

흡흡 거리는 그 큰 아가리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 넓은 곳 어디에도 내 쉴 곳은 없었다

요리조리 눈치 보며 사느라 내 작은 눈알이 튀어 나갈까 전쟁 치듯 살아온 날들이었지

우리는 한 무리로 떼를 지어 다니며 살았다

그 어느 것보다도 더 큰 아가리의 음흉한

함정이 우리를 노리고 있었다는 걸 우리는 알지 못한 체 평화롭게 들어간 그곳이 그랬다 그물망이 촘촘하게 쪼이기 전까지는 몰랐다.


인간이 쳐놓은 그 큰 아가리에 우리는 몽땅 싹쓸이로 잡혔다 서로 밀치며 파드닥거리다 스스로 죽어간 우리의 일생은 길지 않았다. 짠물에서 살아온 우리는 또다시 짠물에

빠지는 뜨거운 신고식을 마쳤고 선별이란

과정에선 잘나고 구부러지고 옆구리 터지고 대가리 떨어진 것 등 요리조리 등짝이 까지도록 구르며 분리당해야 했다.


잘 빠지고 빛깔 선명한 것들은 그 잘 난

몸매에 반들반들 윤기 좔좔 흐르도록 치장을 하고 단맛에 고소함까지 덧칠한 후에는 거한 상에 올랐지. 그 녀석들의 선택받은 그 멋진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어떤

기대를 했을까!


옆구리 터지고 구부러지고 때깔조차 누루 탱탱한 우리는 눈알만 빼꼼한 쪼꼬미보다 더 못한 대우에도 입 한번 벙긋할 수 없었다 이미 우리는 내장 탈탈 털리고 대가리 붙었거나 떨어졌거나 다 한방에 들어가 육수라는 그 잘난 이름의 농도를 맞추기 위해 또 한 번 발버둥 치며 진액을 다 쏟아야 했다.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탈탈 다 틀린 후에야 허물허물 지치고 뭉그러진 몸

다시마 치맛자락 비집고 숨어들 수 있었지.

아가리 큰 놈들을 피해 떼거리로 다닐 때만 해도 우리의 마지막이 이럴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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