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만에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지다

애착 물건과 다시 만나다

by 수국


우리 아이는 애착 물건 그것이 있어야 잠을 잘 잔다거나 잘 논다거니 어릴 때 애착 물건을 성인이 되어서도 버리지 못한다거나 애착 물건이란 말을 많이 들어 봐 왔다. 애착 물건이란 꼭 어린 아기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 같다.


애착 [愛着] : 어떤 대상에 몹시 끌리거나 정이 들어서 그 대상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함


어떤 청년은 어릴 때 좋아하던 애착 이불을 지금까지 끼고 살아왔는데 이제 너덜너덜 떨어졌으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불안해 어쩔 줄 몰라하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 귀를 만져야 잠들 수 있었다던 한 친구는 결혼해서는 신랑 귀를 만져야만 잠들 수가 있다고 그 친구의 애착물은 사람의 귀.

그 외 어떤 물건이든 애착이 느껴지는 물건이 하나씩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내겐 그럼 뭐가 애착 물건인가? 가만히 돌아보았다 내게도 그런 물건이 있었다.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물건도 마음이 가고 사랑스러운 애착물이 있기 마련이다. 잘 버리지 못하는 습성이 한 몫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의미 없이 굴리는 물건이 아니기에 애착 물건으로 인정.


첫째는 항아리 오 형제였다. 천지도 모르는 새댁이 항아리를 사들이니 주인집 할머니는 마루 끝에 앉아서 ‘음 제법인데 살림꾼이군’ 하는 눈으로 흐뭇하게 바라보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는 일이다 뭘 안다고 셋방 사는 주제에 그 큰 항아리를 다섯 개나 남의 장독대를 비집고 들여 앉혔는지 모르겠다. 가당치도 않게 제일 큰 항아리는 왜 샀을까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지 그저 시골서 어른들 살림하는 걸 보아온 결과로 나도 이제 살림살이를 시작했으니 기본이 장독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식구 많은 집에서나 이름값 할 것 같은 그 큰 항아리는 진작에 다른 집으로 보냈지만 나머지 사형제는 그래도 함께 잘 살아왔는데 몇 년 전 제일 작은 막내가 실수로 깨지는 바람에 대표로 남은 삼 형제는 아직도 거뜬히 잘 지내고 있는 중이다.

특별히 하는 일은 없지만 아직도 반짝이는 광택을 유지하고 있고 오랜 세월 고난도 즐거움도 함께한 항아리 삼 형제를 무심하게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두 번째는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할머니가 입학 기념으로 사주신 연필깎이다 어떤 성문 모양 같기도 하고 궁궐 문 같기도 한 스텐은 아니지만 반짝이던 그것. 이제는 세월만큼이나 낡아 여기저기 검은 반점이 나긴 했어도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중이다. 연필 깎을 일은 극히 드물지만 할머니의 손자 사랑하는 그 마음을 생각하니 버릴 수가 없다. 할머니 가신지는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연필깎이는 아직도 열일 할 수 있는 기력이 남아 있는데


셋째는 개업선물로 받아 온 노랑 바가지 이 또한 엄청 세월이 흘렀다. 플라스틱인지 고무인지 반반인지 무슨 재질인지는 몰라도 참 질기다. 플라스틱이 썩어 없어지려면 500년이 걸린다는 말이 맞나 보다 우리 집에 온 이후로 싱크대 안에서 설거지통으로 얼마나 성실하게 임무수행을 잘하던지 참 예쁘다.


그런데 이번에 이사할 때 마지막까지 사용하고 챙긴다는 것이 잊어먹고 그냥 왔다고 얼마나 아쉬워하며 마음이 짠했는데 이사한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제일 손이 안 가는 그곳에서 다시 만나다니 의외의 일이다. 누가 얘를 데리고 왔지? 나는 그렇게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어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너무도 반가웠다.


분명 나는 아니고 누구라도 챙겨 왔으니 이제라도 만나게 되는구나 재활용 쓰레기로 분리 배출되지 않은 게 어디야 바로 데리고 나와서 본연의 자리로 현역 복귀시켰다. 날마다 때마다 보고 또 봐도 예쁘다. 본의 아니게 일 년 동안 안식년을 한 셈이다. 사람이었으면 반가운 마음에 부둥켜안고 한참을 뛰었을 것이다. 그렇게 노랑 바가지와 보고 또 보는 새로운 만남은 시작되었다.

넷째로는 선물로 받은 도루코 식도이다. 이번 이사할 때 잘 챙기지 못하여 빼먹고 와버렸다. 어색한 칼을 손에 잡을 때마다 내 손에 최적화되었던 그 칼이 생각난다. 싱크대 쪽 마지막 점검을 놓치지만 안았어도 이렇게 애틋한 미련은 없었을 텐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랑 바가지와 함께 아쉽게도 놓쳤구나 생각했는데 바가지는 숨바꼭질하듯 찾았지만 그 칼은 생이별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나의 애착물건도 나열하니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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