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에도 없던 계단 오르기
언제나 시장 한 바퀴 돌아보고 와야지 하는 맘으로 나간다. 항상 가벼운 마음 그 속에는 운동이란 의미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시장을 지나다 보면 기대하지 않은 좋은 물건이 마음을 당기면 이것저것 사게 되고 양손이 무거워지면 당연히 핑계 삼아 운동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특별히 마음을 사로잡는 물건을 만나지 못할 때는 양손 가볍게 땀이 날 정도로 걷기도 한다. 하루에 만보 걷기라던가 부담스러운 그런 목표를 정하지는 않는다. 시장 주변을 돌아보다 신나면 공원을 돌기도 하고 탄력이 붙으면 동네 뒷산을 오르기도 하면서 땀을 뺀다.
40 계단 오르기 다섯 번 그것도 운동이라고 다리가 뻐근한 느낌이다. 공원 다섯 바퀴 돌기 이만하면 적당히 운동도 했고 하루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웬걸!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21층에서 점검 중 빨강 불이 깜빡거린다. 그래도 혹시나 버튼을 쿡 눌러본다. 알면서도 요행을 바란 걸까 점검 중이란 불이 꺼지고 2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따박따박 내려오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더 누른다.
방금 점검 중이던 엘리베이터가 내려온들 믿고 탈 수 있을까 내 마음과 생각도 점검해 본다. 올라가다 흔들리며 툭 떨어지면 어쩔 거야 미심쩍어서 탈 수 없을 것 같다. 그냥 포기하기는 약 올라서 두 번이나 눌렀던 것이다. 첫 번째는 ‘혹시나’ 두 번째는 ‘왜 이러는 거야’ 이런 의미. 그러나 아닌 건 아닌 거야 나에게 요행이란 없다. 드라마 대사처럼 “이건 아니라고 봐” 어쩌나!
고장 난 엘리베이터는 멈추었지만 나는 집으로 가야 한다. 걷기 예행연습한 그 여파로 지체할 것 없이 계단으로 가자. 헉헉거리며 올라가는데 위에서 터벅터벅 힘겹게 계단을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난다. 몇 층에서 내려오는 발걸음인지 마지못해 걷는 무거운 발자국 소리다.
아파트 특성상 몇 호에 사는 누군지도 모르면서 서로가 짜증 제대로인 얼굴 쳐다보며 안녕하시냐고 묻기도 그렇다. 알아서 지나가게 조용히 비켜줬다 새댁인지 아닌지 젊은 여성이다.
반쯤 올라갔을 때 남자 청년도 탁탁탁 계단을 내려오는 중이다. 아무 말없이 내려가는 두 젊은이를 보면서 젊으니까 걸어서 내려간다. 나이 드신 어른들은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꼼짝 못 하겠구나 생각하니 이럴 때는 아파트라는 곳이 불편하다.
평소에도 아파트 고층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앞으로도 고층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쉬엄쉬엄 재미 삼아하는 계단 오르기도 아니고 예상에도 없던 일이다. 억지로 하려니 왜 이렇게 지겹고 힘이 들고 숨이 차고 땀이 나는지.
반쯤 왔을 때 떠오른 생각 하나, 차라리 밖으로 나갈걸. 밖에서 한참 더 걷고 왔으면 점검 끝나 있었을 텐데. 첫발 내밀 때 자신감은 다 어디로 가고 헉헉 거리며 올라와 대문 앞에 서니 다리는 후들거리고 온몸은 칙칙하다.
평소에는 문 여닫는 그 몇 초의 시간도 느리다고 조급증을 내지만 그 작은 공간 기계의 힘에 온전히 의지하여 살고 있었네. 그 길이 꽉 막히니 이렇게 대책 없이 헉헉거리는구나.
비상시를 대비해 비상구가 있듯이 항상 비상대비를 위해 체력단련을 해야겠다는 것을 또다시 느낀다. 늘 건강이 최고라고 깨달으면서도 실천을 못하니 그것이 문제다. 지리산 천왕봉을 거뜬히 오르내릴 힘만 있다면 이깟 계단쯤이야 무슨 걱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