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보다 잡초 그 이름은 지칭개

보약 같은 나물

by 수국

1. 백수도 능력이다

도심에서는 꽃이 피는지 새가 우는지 계절도 잊은 채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면 세월은 어느새 저만치 앞서 가버린다. 야속한 시간은 기다려 주지도 않고 어쩌다 보니 겨울 초입부터 한겨울을 시골에서 놀고 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건만 춥지도 않은 겨울이 왜 이렇게도 지루하게 느껴지는지 차라리 눈이 라도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 얼음이라도 꽁꽁 얼어 꼼짝 못 하게 발을 묶어 놓던가 멀쩡한 날에 특별히 할 일도 없이 놀고 쉬는 것도 힘들다. 어제나 오늘이나 마른땅만 보고 있자니 지루하고 답답하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노는 것도 체질이고 백수도 능력이다. 오늘은 또 뭘 하지 뭐라도 움직여야 시간도 잘 가고 사는 맛이 나는데 놀아도 온전히 즐길 줄을 모르니 어쩌나. 나는 일중독자가 확실하다.


때마침 건너편에 사는 순이 씨가 “놀면 뭐해요. 냉이나 캐러 갑시다” 얼씨구나 안 그래도 하루해가 지겨운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없는 일도 만들어서 뭐라도 꾸물거리고 있을 판인데 잘 됐다 싶어서 바로 일어서며 아직 겨울인데 냉이가 있을까요? "지금 이럴 때 캐 먹어야 맛있지 좀 더 있으면 못 먹어" 아니 벌써,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는데 마당에 풀도 한 포기 안 나는데 무슨 냉이가 있을까. 나들이 삼아 콧바람이라도 쐬고 햇볕이라도 쬐면 되니까 별 기대 없이 나섰다. 검정 비닐봉지에 호미자루 하나 넣고 본토 베기는 끼지도 않는 장갑까지 끼고 큰일이나 하러 가는 일꾼처럼 완전 무장을 했다.


집 근처 밭뚝에 갔는데 어머 진짜 냉이가 있었다. 아직은 눈을 크게 뜨고 봐야 보일 듯 말듯이 땅에 딱 붙어 아직 어리지만 뾰족한 호미 끝에 순순히 따라 나온 것은 냉이가 맞다. 한 포기 있으면 그 옆에 옆에 나란히 모여 있는 덕분에 한 곳에서 아주 싹쓸이를 하고는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생각지도 않았던 냉이 국을 먹게 될 희망이 보인다. 계속 쭈그리고 앉으니 힘들고 엉덩이 치켜들고 그래도 신난다고 한참을 캤다. 무슨 일을 하던지 몸을 움직이고 돌아다니니 시간도 잘 가고 이게 바로 사는 맛이구나 싶다. "이때 먹는 냉이가 보약인겨" 하면서 순이 씨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좋아 좋아, 오늘은 이 기분만으로도 한층 더 건강해진 느낌이다.


집으로 오는 길에 개울가 빨래터에서 훌렁훌렁 냉이도 깨끗이 씻고, 신발에 묻은 흙도 씻어내고, 여자들은 또 빼놓을 수 없는 수다로 속도 좀 털어내고, 둘이서 하하 호호 햇살 가득한 빨래터에서 웃고 즐기며 쉬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강동 강서로 갈라진다. 잘 가라고 인사한 후 걸어가면서 오늘 우리 두 집 저녁 반찬은 냉이 무침에 냉이 국 비슷한 한 상이 차려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 냉이에 빠져들다

한번 냉이 맛이 들어서 그런지 햇살 따뜻한 오후 시간을 그냥 보내기가 너무 아쉬워 저 산 아래 친환경 밭에 가면 아무래도 믿을 만한 냉이가 있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에 한 번은 가보고 싶었다. 남편과 서로 합의하에 차를 타고 냉이가 있는지 없는지 가 보기나 하자고 집을 나섰다. 냉이 비슷한 것이 있기는 한데 집 주변에서 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잎도 크고 뿌리도 길고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새다. 어쩔 수 없이 몇 뿌리 견본으로 캐서 올 수밖에 없었다. 확실하지 않은 일에 힘 빼며 고생할 필요는 없는 법이니까


순이 씨가 하는 말 "냉이가 겁나게 크네요. 맞아 맞아 냉이 맞아" 진짜 냉이가 맞냐고 묻고 또 물어도 냉이가 맞단다. 그러면 됐어 나중에 캐러 가자고 그곳에 가면 냉이 겁나게 많아요. 하고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그만 시찰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고 시골의 겨울이란 무료하고 지루하다 따스한 햇살이 너무 좋아 다시 냉이로 뭉친 우리는 검정 비닐봉지 하나씩 들고 냉이 밭으로 갔다. "냉이가 겁나게 크네, 냉이가 겁나게 많네, 야 심봤다." 하면서 신나서 엉덩이 실룩거리며 좋아하는 순이 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순간이다.


같이 오길 참 잘했어 냉이 캐는 것도 좋지만 웃기도 많이 웃고 즐겁게 보내는 시간이 좋다. 뿌리가 길고 튼실한 대신에 얼마나 깊이 박혔던지 한뿌리 한뿌리 캘 때마다 있는 힘을 다하지 않고는 감히 깊이 박힌 뿌리를 뽑아낼 수가 없다. 여기저기 눈 돌리는 곳마다 저 여기 있어요. 나도 있어요. 나도요 하는 것 같은 냉이를 보니 마음은 바쁘고 신나서 몸이 골병드는지도 모르고 어깨는 아팠지만 열심히 캤다. 그러다 보니 머리까지 띵해지는 것이 역시나 무리를 하고 있다는 신호가 온다. 집에 와서 다 다듬고 나니 몸이 힘들다고 예고를 한다. 아무래도 난 몸살이 날 모양이다. 이런 저질 체력으로 무슨 일을 하겠다고 그래 욕심을 내었던고 그래도 크고 튼실한 냉이 한 광주리를 바라보니 뿌듯하다. 겁나게 크지만 부드러운 냉이 국과 냉이 나물을 맘껏 먹고 나면 올봄 춘곤증은 싹쓸이 물러가겠지.

3. 냉이 아닌 잡초만 캤다

이 보약 같은 냉이를 맛보고 나니 우리 집 근처 잔챙이 냉이는 캐러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기왕이면 하나를 캐더라도 크고 좋은 것이 캐는 맛이 나지 하지만 이동수단이 필요한 곳이라 누구라도 같이 가야 할 운명이다. 냉이 꽃이 피기 전에 또 한 번은 더 가야 할 텐데 기회를 보고 있다가 싸울 때 싸우더라도 만만한 게 남편이라고 둘이 같이 냉이 캐러 가자고 했다. 웬일로 쉽게 가잖다 봉지랑 호미 하나씩 챙겨서 그 밭으로 또 갔다.


서로 발길 가는 곳을 찾다 보니 이쪽저쪽 뚝 떨어져서 냉이를 캤다. 한참을 캐던 남편이 "지난번에는 냉이 뿌리가 하얗더니 오늘은 냉이 뿌리가 보라색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는 별 신경도 안 쓰고 오직 내 앞에 주어진 냉이 캐기에만 집중했다. 쌀쌀한 겨울날이지만 열심히 힘쓰다 보니 온몸이 더워서 땀이 났다. 사람은 열심히 일한 대가를 먹고사는 것이 좋은 것이여. 난 옆에 옆에 있는 냉이들을 보니 마음이 더 바빠져서 허리 펼 시간도 없이 끙끙거리며 캐느라 정신이 없는데 "난 한 봉지 다 캤어 이제 그만 가자 다음에 또 오고" 그러면서 남편은 오고 있었다. 예 그럽시다.

허리를 펴며 일어서는데 "난 깨끗하게 했는데 뭐 이렇게 지저분하게 했냐"라고 한다. 난 다듬지 않고 했으니 떡잎도 있고 지저분한 건 당연하지 인정하면서 다 다듬어 가면서 했느냐니까 "난 다듬을 것도 없어" 그쪽에 냉이는 특별했는가 여기는 떡잎이 많아서 다 다듬다가는 몇 뿌리 못 캘 것 같아서 마구 캐기만 했는데, 집에 가서 앉아서 다듬으려고 하면서 깨끗하게 잘 캔 냉이 얼마나 캤는지 어디 한번 봅시다. 하니 한 줌 들고 자랑스럽게 보여 주는데 이것은 냉이는 분명 아닙니다.


이름도 성도 알 수 없는 풀인데 봉지를 거꾸로 털어보니 세상에 냉이는 한뿌리도 없고 똑같은 잡초만 한 가득이다. 얼마나 우습던지 나도 몰래 박장대소. 배를 쥐고 한참을 꺼억꺼억 넘어가도록 웃었다. 참 잘했어요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거침없이 웃기만 하는 나를 의아해하며 쳐다보는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웃음을 끊고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최근 들어 이렇게 배가 아프도록 웃어 본 것도 처음이다. 누가 봤으면 저 여자가 미쳤나 왜 저래할 만큼 박장대소. 이렇게 맘껏 웃게 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어쩜 이렇게 다른 것만 캤을까.

이 풀이 먹는 풀인지 독풀인지 알 수 없으니 수고는 했지만 그냥 다 버릴 수밖에요. 냉이보다는 눈에 쉽게 띄게 생겼고 그것이 냉이라고 눈에 들어왔으니 오직 첫 번째로 인식된 그것만 보게 될 뿐.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천지가 냉이지만 안 보이는 데는 방법이 없지. "내가 캔 것은 마을 회관에 할머니들 반찬 해 드시라고 드려야지" 하더구먼 그냥 드렸으면 어떻게 됐을까! 냉이와 그 풀을 보고 또 보고 분별할 수 있게 확실하게 인지한 후 그 자리로 돌아가 다시 보니 냉이가 보이더라면서 냉이를 조금 캐더니 맥 빠져서 하기 싫다고 포기하고 돌아왔다.

그 후 논둑에도 들판에도 가는 곳마다 “내가 좋아하는 냉이는 여기저기 많다”라고 웃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이름 모를 그 풀이 궁금해서 누구에게라도 기회가 되면 물어봐야겠다고 하던 차에 어느 유튜브 방송에서 들에 흔한 풀이지만 약효가 좋다고 설명을 하는데 흡사 그 풀이다. 약초로 사용한다는 말에 그 이름 어떻게든 기억하리라 이름도 생전 처음 듣는 ‘지칭개’ 본토 베기의 확실한 설명이 곁들여진다면 앞으로는 지칭개를 더욱 사랑하게 되리라. 냉이 없는 논둑에도 지칭개는 흔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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