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 삼촌과 연상 조카

옛일을 기억하며

by 수국


KBS1 TV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란 방송에서 초등학생 두 명이 모래밭에서 놀고 중년 어머니도 함께 있었다. 그 어머니에게 “손자인가 봐요” 하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예’라고 할 줄 알았는데 “손자랑 늦둥이 아들이에요.” 손자라고 하기에는 할머니가 젊어 보였지만 그래도 아들이라고 할 줄은 몰랐다.


쉰둥이도 있다고는 하지만 아홉 살 삼촌과 열 살 조카가 사이좋게 놀고 있는 모습이다. 요즘 흔하지 않은 모습이라서 TV를 보면서 칠순이 넘은 우리 고모랑 언니와 똑같은 상황이네. 지금도 그럴 수 있구나 새로운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조혼에 산아 제안도 없었으니 시어머니도 며느리보다 더 늦게 출산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은 결혼을 늦추는 편이라 연하 삼촌과 연상 조카를 보기 힘든데 귀한 일이다. 한 살 위인 조카는 삼촌을 많이 의지하고 삼촌은 어려도 의젓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고모랑 언니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 언니보다 한 살 어린 고모와 한집에서 살았다. 젊은 시어머님이 어린 맏며느리에게 대가족 살림을 맡기고 막내딸까지 두고 외출하시면 "시누이도 같이 젖 먹여 키웠다." 했던 그 말이 요즘도 가능한가?


그때는 어린 며느리가 감히 어른 앞에서 내 자식이라고 얼래고 달래며 안아 줄 수도 없었다. 어른 앞에서 그러는 게 눈치 보여서 맏딸인 언니를 제대로 돌보지도 못했다. 언니는 엄마보다 고모의 엄마인 할머니를 엄마보다 더 좋아했단다.

고모가 형님이라고 부르니 언니도 엄마를 형님이라고 불렀고. 언니는 커서도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해서 엄마라고 잘 부르지 않았다.


언니와 고모는 자매처럼 자랐고 엄마도 고모를 딸보다 더 신경 썼다. 시어머님이 뒷전에 계시니 감히 시어머니의 막내딸 시누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잔 심부름 하나 시키지 않았고 언니를 얼마나 부려먹었으면 언니는 “엄마는 미웠고 할머니가 더 좋았다.”라고 한다.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며 놀다가 오디 산딸기 머루 다래 이런 걸 한 줌씩 따오면 "할머니는 드려도 엄마는 주고 싶지 않았다."는 언니도 이해가 되고 고된 시집살이를 생각하면 엄마도 이해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딸에게 일을 많이 시켰구나. 맏딸은 살림밑천이란 말이 이래서 나왔나 싶기도 하다.

엄마는 엄마대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언니는 고모와 같이 놀다가도 언니만 불려 가니 어린 마음에 고모와 비교하며 얼마나 또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맏딸의 그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맏딸은 살림밑천이란 말이 결코 좋은 말은 아닌 듯. 지금이야 시대가 바뀌었지만 맏딸이 무슨 죄라고 맏딸로 태어나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고생해야 하는가. 우리 언니를 비롯하여 예전 그 시대에는 맏딸이 고생 많았다.


TV에서 그 어머니께 “아들과 손자 중에 누가 더 사랑스럽냐고” 물었다. “솔직히 손자가 더 사랑스럽다”라고 그 어머니는 말한다. 손자보다 더 어린 늦둥이 아들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고민할 것도 없이 손자라고 쉽게 대답한다. “늦둥이 아들이 더 사랑스럽지 않으냐?” “아들은 잘못 키우게 될까 책임과 의무가 따르지만, 손자는 그런 부담 없이 예쁘게만 봐주면 되니까 손자가 더 사랑스럽다.” 그래서 내리사랑이라고 하나보다.


작가의 이전글토닥토닥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