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뭐 갈래

가을은 깊어가고

by 수국

물들 때을 놓쳐버린 초록 잎도 말라 떨어지고 곱게 물든 단풍도 떨어진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둥치를 바라보며 지난날들이 쓸쓸하게 다가온다. 좋은 기억보다는 아픈 기억들이 더 오래 남아 있다는 것이 별로 달갑지는 않다. 그래도 그 속에는 슬픔도 감사도 고마움도 진심 어린 마음도 있었기에 지나고 보면 다 견딜만한 일들이다.


주변에서 젊은이든 중년이든 가족의 돌연사로 슬픔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웃들이 있다. 새삼스럽게 지난 일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그때까지도 정신 못 차리고 서로 날을 세워 상대가 문제의 중심인 줄로만 알았다. 잘잘못의 책임을 묻고 따지느라 다정하게 살아 볼 겨를도 없었는데 그때는 무슨 유행병처럼 우리 또래들 가정에 가장들의 사망사고가 릴레이 계주 하듯이 일어났다. 우리가 벌써 이럴 때인가 깜짝 놀라 자신을 돌아보는 사이 어느새 인생 중반에 접어들었다.

대형 화물차 운전으로 가정 경제를 책임졌던 가장이 고속도로 주행 중 사고로 즉사한 일.


회사 경영상태가 여의치 않아 그 회사를 퇴사하고 친구 회사로 첫 출근한 날 기계 오작동으로 머리가 부딪쳐 사고사를 당한 일.


아침에 멀쩡하게 건축현장으로 출근했던 가장이 출근하여 몇 시간 되지 않아 심장 마비로 현장에서 말없이 떠나버린 일.


택시 영업 중 길가에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 엎드려 가버린 돌연사.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아 다행이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그렇게 허무하게 남편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슬픈 가정들이다.


예상도 못한 일을 당한 친구들과는 또 다른 한 친구의 지난 이야기는 슬픈 사연이지만 모두를 웃게 했다. 암 투병하다 사망한 남편을 영안실로 보내고 조문객들이 오기 전 “미용실을 다녀왔다”는 그 말에 모두 빵 터졌다.


남편의 병세가 위중함을 알았기에 이별할 준비는 했겠지만 남편이 숨을 거두었는데 미용실 갈 정신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지난 일이라 웃긴 해도 참 신기했다.


평소의 남편과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면 조문객들 앞에서 망가진 모습을 보이기 싫었겠지. 하지만 우아하게 머리를 살리고 조문객을 맞이했을 그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특이하다.


그 후 홀로서기를 해야 했던 그 친구들은 생각보다 잘 적응했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라 해도 어리바리 정신 못 차릴 나와는 다른 뭔가 단단함이 있었다. 부부 사이가 좋았던 이들이 이별의 아픔을 먼저 겪었다.


한 친구는 남편이 일찍 가기는 했어도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 “다른 사람 평생 받을 사랑 다 받았다고 원도 한도 없겠다.”라고 한다. 좋은 남편이었음을 인정하지만 남편의 보호와 사랑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그 충격에서 벗어나 홀로서기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그 속을 말로 다 할 수 없다”그런다.


“형광등이 고장 나 덜렁거려도 손볼 살람이 없다.”는 두 딸 엄마의 현실 속 어려움은 남편의 부재를 실감하며 시시 때때로 떠난 남편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때때로 쓰러지고 넘어지는 마음 바로 세우기, 감정 추스르기와 가정 경제 살리기, 자녀들 문제 등 할 일도 많다.


50대 초 중반에 어려움 당한 가정들을 보면서 이제는 우리 차례인가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믿을 구석이라곤 우리는 티격태격하느라 서로에게 사랑의 분량을 채우지 못했기에 차마 우리를 떼어 놓을 수는 없을 거라고 믿었다.


여러 사건들을 보면서 충격요법의 결과로 미운 정이 사랑으로 변한 건지 그 계기로 우리는 차츰 철들기 시작했다.


그 뒤 한 번씩 배구공처럼 툭 툭 날아와 내 머리를 때리는 말은 “남편 있을 때 잘해”였다. 왜 하필이면 남편들을 다 데려갔는지 아내 잃고 측은하고 불쌍한 남편들이 주변에 많았으면 “아내 있을 때 잘해”라고 뻐기며 큰소리 한번 쳤을 텐데. 홀로서기 위해 끙끙거리는 그 엄마들을 보면 감히 입이 있어도 큰소리칠 수가 없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들은 다 자라 가을 단풍잎처럼 각자의 색을 드러내며 독립해 나간다. 앙상한 겨울나무처럼 홀로 남은 엄마들은 그 자리 지키며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미우나 고우나 기댈 남편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다행인지 그 고마움에 감사해야지. 남편이 아내가 내 곁에 있어 준다는 것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남편과 아내로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잘 살아가고 있다면 얼마나 큰 복인지 끝까지 더 사랑하며 잘 살아가기를!


그렇게 최고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남자의 자존심을 위해 엄지 척하며 당신이 최고예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그 말은 잘 못하면서 불쑥불쑥 튀어나왔던 불평불만 이제는 불협화음은 줄이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최고예요.

믿음직한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이런 말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샘물처럼 솟아나기를 기대하며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의미 없다. 사랑이 뭐길래 이론과 실제는 참 어렵다.






작가의 이전글연하 삼촌과 연상 조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