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적 기질은 0%

샛별 보기 운동도 아니고

by 수국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모두가 잠든 밤에 급하게 부르는 목소리. 설득도 이해도 통하지 않는 불통의 시간이 시작된다.

횡설수설 끝도 없는 이야기들이 옆방 벽을 넘을까 무서워 미리 차단하려 안간힘을 쓰지만 확성기를 통한 듯 더 크게 울려 퍼지는 이 상황을 어쩌나. 마음이 조마조마 애간장이 다 탄다. 어르신 제발 좀 주무시소서.

옆방의 버럭 3인방 어르신들을 깨우면 왕왕 시끄러워 안 되는데 어찌합니까.


22시부터 아침이 올 때까지 눈앞에 사람이 없으면 부르는 그 횟수라도 줄여 보려고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과거로 갔다 상상의 세계로 갔다 이야기가 거침없이 이어진다. 입을 허벌 레 벌리고 맥없이 누워 계실 땐 말 한마디 할 힘도 없을 것 같더니 이럴 땐 어디서 힘이 샘솟는지 의외의 상황이다. 늙으면 양기가 입으로 간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손도 발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여 뻣뻣하게 굳어 있건만 깊어가는 이 밤에 심장까지 쩌렁쩌렁 뒤흔드는 저 소리는 어디서 나오는 에너지일까.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을 귓등으로 흘려 넘긴다 해도 고역이다. 뇌압이 오른다. 아무리 죄인이라도 밤새 계속되는 이런 고문은 없을 것이다. 03시가 넘어가면서 한계를 느낀 따가운 눈알은 모래밭에 굴려 놓은 듯 뻑뻑하다. 어깨와 팔꿈치 손마디 무릎관절과 발목까지 진액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스멀스멀 묘한 느낌에 발끝까지 찌릿찌릿하다. 이런 걸 두고 뼈가 녹아내린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듣기 싫은 소리를 밤새 들었으니 스트레스 조절 능력이 우수하다던 건강검진 결과와 상관없이 스트레스 조절 능력 제로 마이너스로 떨어지려는 순간이다. 화가 정수리를 치고 오를 기세다. 이럴 때는 어떻게 폭발 위기를 잠재워야 할 것인가 잠시 밖으로 나가 찬 공기를 들이마시며 속에서 열 오른 호흡들을 길게 내뿜는다.


마당 끝에 서서 새벽하늘을 쳐다본다. 오늘따라 수많은 별들은 초롱초롱 더 밝게 빛난다. 반짝이는 별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다는 것이 아쉽다. 잠시라도 현장을 비켜나야 숨이라도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온 것뿐이다.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그래 불쌍하지 환자잖아. 팔다리 육신은 물론이거니와 뇌까지 고장이 났으니 오죽하겠어. 사실은 바닥을 드러낸 내 정서를 정화시키려 다시 한번 인지기능을 동원하며 내게 선한 구석이 어디 1%라도 남아 있나 애써 찾아본다.


화가 난다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고 해야겠지만 밤새 횡설수설하는 그 소리를 어찌 아름답다 할 것이며 사랑스럽다 할 것인가? 불편한 진실은 ‘나는 천사적 기질 없음이다.’ 아니면 ‘하루 사용량 초과이다.’ 수면제도 효과 없는 정말 대단한 어르신 덕분에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아무 생각 없이 허리 멍텅 한 내 머릿속과 초점 없이 껌벅이는 내 두 눈과는 다르게 아침 햇살에 더 반짝이며 생기 있어 보이는 이 어르신의 생리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르신 오늘 낮에는 또 꿀잠을 주무시겠지요. 내 발걸음은 앞으로 가는데도 옆으로 넘어질 듯 비틀거린다. 후들거리는 근육들을 바로 세우려 정신을 차려본다. 정신이 몽롱하다.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뼛속 칼슘이 빠져나간다.” 던 어느 의사의 그 말이 귀를 때린다. 어머 어쩌지. 골다공증 골인 선을 코앞에 둔 선수인데 별별 걱정이 다 많다.


휠체어를 다리 삼아 움직이고 누웠다 앉았다를 업으로 삼는 어르신들에 비유하면 아직 쨉도 안 되는 연수를 살아왔지만 그래도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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