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있을 때 잘하라고
꽃샘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음산한 날씨다. 겨울은 가고 봄이 오려나 했더니 추위는 여전하다 어르신들 무르팍에서 바람 나온다고 하겠다. 생각하며 앞만 보고 열심히 걸었다. 그때 ”00아” 어디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마당 끝에 나와 계시던 어르신이 바쁘게 전할 소식이라도 있는지 빨리 와 보라고 손을 흔든다. 반가움에 양손을 흔들며 달려가 나무 울타리 사이로 얼굴을 들이대며 밤새 안녕하셨냐고 안부를 여쭸다. 눈이 마주치자 첫마디에 “최 00 갔다.” 하신다. 어디 갔어요? 했더니 “멀리 갔다. 불쌍한 것”하며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며 말을 멈췄다. 무슨 의미인지 짐작은 가지만 그럴 리가 있나.
담장을 사이에 두고 긴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순 없는 일이다. 얼른 들어갈게요. 하고는 출입구를 통과하고 생활실로 들어갔다.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어르신이 허리 꼿꼿하게 세우고 늘 앉아 계시던 자리는 휑하니 비었다. 삼선 슬리퍼 두 짝만 소파 아래 얌전히 놓여 있었다. 기분이 참 묘하다. 예상도 못했던 사람이 순간 이동이라니 참 의외의 일이다. 그렇게 쉽게 가실 줄은 정말 몰랐다. 죽으로 연명하고 시시때때로 변을 볼만큼 속이 온전하진 않았어도 늘 그랬듯이 어제나 오늘이나 별 변화 없이 그 자리 지킬 줄 알았다. 사람 일이란 하루 앞도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밤에 응급실에 갔다가 새벽에 돌아왔는데 아침식사 중 스르르 넘어가서 또 응급상황 발생 발 빠른 움직임으로 다시 병원으로 갔단다. 짧은 시간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모두 의아해하며 의사의 정확한 진단은 없어도 모두 이미 안된다는 결말을 짓는 듯한 눈치다. 치료받고 괜찮아져서 오실 거예요 하니 “안된다 안돼 보면 모르나” 하신다. 오랜 세월의 경륜을 무시할 수 없는 듯 직감으로 느꼈듯이 몇 시간 뒤 정확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마음을 다해 잘해드릴걸 미안한 생각에 마음이 저려왔다. 이미 때는 늦었다.
지난 후에 아쉬워하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을까. 누가 뭐라 해도 쓰다 달다 대꾸 한마디 속시원히 하지도 않았는데 그 속은 오죽했을까. 떠나기 직전까지 사용했던 빨간색 사각 머플러와 고상하고 점잖은 누빔 조끼. 통통하게 부은 발에 꼭 끼였던 삼선 슬리퍼가 하루아침에 주인의 온기를 잃고 흩어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 쓸쓸해진다. 유품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웠다. 차라리 안 보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다.
“누구 똥냄새 안 나는 사람이야 어딨겠노마는 00 똥냄새는 유별나다 유별나”라고 정면으로 무시했던 그 어르신도 막상 떠나고 나니 미안한지 “밥 한 그릇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죽만 먹다 갔다고 안됐다.” 하신다.
날마다 “먼저 죽는 게 복이다”라고 하시더니 죽음 앞에서는 다시 한번 삶을 돌아보며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사는 게 뭔지 오늘이 지나고 내일 아침 또 저 하늘을 볼 수 있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내 앞에는 많은 세월이 기다려 주리라 착각하면서라도 살아야 오늘을 더 성실히 살아내지 않을까. 갈 적에 가더라도 오늘은 또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 인생살이 아닌가. 주변의 충격으로 오늘은 더 정성을 다해 착실하게 살아가 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