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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하려고 했는데

유치원 친구와 함께(61개월)

by 수국

친구를 무척 좋아하는 클로이는 마음이 여리고 정에 약한 아이다. 어릴 때는 잘 울지도 않더니 차츰 커갈수록 툭하면 잉잉 울기도 잘 운다. 더 어릴 때는 헤프게 웃지도 울지도 않고 단단한 깡아리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둘 나이 숫자를 더할수록 울보가 되어간다. 어릴 적 그 깡은 다 어디 가고 얘가 왜 이렇게 허물허물해졌을까.


어떤 상황에서든 삐 울어서 해결하려 하는 마음 약한 행동을 자주 보인다. 하루 종일 유치원에서 놀다 온 것도 모자라 친구와 둘이 짝짜꿍이 맞아 오늘은 내 집 내일은 네 집에서 놀이가 계속된다. 적당히 놀고 끝나면 좋겠는데 부모들이 퇴근해 올 시간인데도 더 놀겠다니 난감하다. 퇴근하는 부모들과 마주치지 않고 흔적 없이 사라져 주었으면 좋겠는데. ‘이제 집에 가자.’ 면 더 놀고 싶은 데 가자 한다고 헉헉 울어 버린다. 참 황당하다. 할머니도 우락부락 속이 탄다.


얼마나 놀아야 흡족하려나 친구와 마음 상해서 삐치지 않는 이상 달라질 게 없다. 삐쭉빼쭉해도 내일만 되면 또 하하 호호 껴안고 좋아 좋아 어쩔 줄 모를 텐데 뭐. 내일 또 놀자며 겨우 데리고 나와 집으로 오자마자 TV 리모컨부터 찾아 만화를 튼다. 클로이 할머니랑 이야기 좀 하자. 뿔난 할머니의 제안이다. 왜 TV부터 켜는 거야. 손녀가 삘삘 우는 통에 열받은 할머니도 속이 부글거리는데 질질 짜면서 뭐라고 구시렁 거린다.


뭐 뭐라고?

“ 진정하려고 했는데”

뭐라고 했는데 다시 말해봐

“진정하려고 했다고”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

진정하는 게 뭐야? 어려운 단어를 무슨 뜻으로 말하는가 싶어서 되물었다.

“ 만화 보면서 마음을 진정시킨다고”

만화를 보면 마음이 진정돼

“응 조금만 보려고 했는데”

만화 보면 끝없이 보려고 하는 중독성 때문에 미리 차단하고 싶었는데 타당성 있는 이유에 할머니도 생각이 달라진다.


그래 그렇다면 조금만 보고 끄자. 얼마동안 볼래 10분이면 되겠어. 10분만 보고 끄는 거야. 10분 알람을 맞췄다. 10분 후에 알람이 울렸고 약속한 게 있어서 스스로 끄기는 했는데 진정이 안 됐는지 샐쭉하며 자기 방으로 가버린다. 속이 많이 상했구나. 세상에 어쩌나, 살다 보면 뜻대로 안 되는 일도 많단다.

<진정하다: 가라앉혀 조용한 상태로 만들다.>

진정이란 이런 단어를 어떻게 알았지.

또래 친구 앞에서 툭하면 우는 소리에 뿔난 할머니도 상한 마음 진정시키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둘이 서로 떨어져 진정하는 시간을 갖자.


친구와 둘이 간식을 먹으며 나누던 대화를 생각하면 진정할 시간도 필요 없이 웃음이 나온다.

친구 1 내 엄마 아빠는 소주도 똑같이 먹어.

친구 2 내 엄마 아빠는 만나면 껴안고 뽀뽀도 해

친구 2 내 아빠는 유치원 안 가는 주말에만 집에 와

친구 2 내 엄마 아빠도 만나면 술 잘 먹어

친구 1 내 아빠는 요리도 잘한다.

친구 2 내 아빠는 설거지만 해

친구 1 너 아빠는 요리 잘 못하나 봐

친구 2 그게 아니고 내 엄마가 더 잘하니까 그렇지.

외동딸 둘이서 내 부모 험담인지 자랑인지 나누는 그 대화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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