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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예기 좀 들어 봐

만화에 빠져드는 아이(61개월)

by 수국

만화 볼 때는 누가 뭐래도 꿈쩍 않고 빠져드는 아이다. 만화에 집중 중인데 밥 먹자는 소리가 들릴 리가 없다. 밥 먹자고 불러도 불러도 들은 척도 않는다. 화면이 꺼지든가 중지되면 그때는 투덜거리면서 밥상에 앉겠지만 순순히 돌아올 기색이 없다. 만화 안 보면 엄마 아빠가 보고 싶고 만화 볼 땐 아무에게도 관심 없고 무슨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TV가 꺼지면 어른들끼리 이야기하면 그 예기에 끼어들어 자기 예기 안 들어준다고 짜증이다.

‘밥 먹고 씻고 자자 ‘는 소리를 제일 싫어하는 아이에게 오늘 엄마 아빠는 저녁 먹고 늦게 온다는데….. 말도 다 끝나기 전에 얼굴을 찌푸리며 할 말이 많다. “나도 학교 갈 때 되면 아빠엄마랑 회사 갈 거야 ”

학교 안 가고 회사를 간다고?

“응. 빨리 회사 가서 할아버지 소주 사줄 거야.”

“그래, 할아버지 그때되면 소주 안 먹고 양주 먹을 건데 양주 사줄래? “

“응 양주 사줄게”

양주가 뭔지 소주가 뭔지는 몰라도 원하는 건 다 사준다는 아이 덕분에 웃는다.

"할아버지 건강관리 잘해야겠네. 손녀가 양주 사줄 때까지 살아야지 그때까지는 안 살겠나. “

다섯 살 손녀와 할아버지는 소주가 될지 양주가 될지 모를 훗날을 생각하며 즐거워한다.

회사 가려면 많이 커야지 빨리 밥 먹자.

밥 먹이려 애쓰는 할머니와 상관없이 엉뚱한 소리만 한다.

"할아버지 그때되면 몇 살이야?"

손녀의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할아버지.

하루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인데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후를 생각하니 아득한 모양이다.

"할아버지 그때까지 살아있을 거야 걱정 마 "

"할아버지 아마도 죽을 걸."

"허허. 왜 그렇게 생각해."

“몰라”

요즘은 백세 시대야 할아버지 백 살 되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어.

“그런 걱정 말고 너나 밥 많이 먹고 빨리 자라라.”

”허허 참, 하하, 히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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