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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린 Jan 17. 2024

보석은 어디 숨어있을지 모르는 것!

처음부터 팀장인 사람은 없다.

내 회사에서의 퇴사 5개월 차. 반가운 연락이 왔다. 퇴사하기 전 MSO로 맡아 경영하던 병원의 간호부 팀장이다. 사실 내가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도 직원을 통해 안부를 여러 번 전해 왔던 고마운 친구인데, 오랜만에 연락을 직접 해온 것이다.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고 일 이야기와 함께 사담을 나누던 사이였는데 얼굴을 본 지 오래인 탓에 메시지조차 너무 반갑다. 여전히 하트 가득 이모티콘 가득한 메시지를 보면서 마음이 뭉클하다. 새해에 꼭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이 친구가 처음 병원에 인터뷰를 보러 왔을 때가 생각이 난다. 병원 직원 채용 시에 내가 직접 면접을 볼 때에는 항상 마지막에 내 팔을 찔러보는 테스트를 하곤 했다. 나이 많은 분도 혈관이 약한 분도 모두 문제없어요! 했던 직원이 막상 채용 이후 실무에서는 자신 있게 말하던 모습과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앳된 목소리와 얼굴이었지만 경력이 짧지 않고 라인 잡는(주사 놓는) 실력도 괜찮은 데다가 똘똘해 보여 며칠 뒤 바로 합격 통보를 보냈었다. 어린 나이인 탓에 막내로 들어왔지만 일을 시켜보니 귀여운 행동과는 다르게 일에는 착실하게 임하는 것이 예쁜 친구였다.




이 친구가 입사한 지 어느덧 2-3년 차 되던 때 같다. 당시 병원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덩달아 직원의 머릿수도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간호실장. 팀장급의 중간관리자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물론 병원에 처음부터 간호실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앞선 글 '안 좋은 병원문화 바로잡기'에서 살짝 이야기를 풀었듯이 원내에 좋지 않은 문화를 만드는 실장이었던 탓에 내보내고 난 뒤 어느새 몇 해가 지난 시점이었다. 내 업무도 하면서, MSO회사와 병원의 직원들을 모두 관리하면서 실장의 역할도 하며 사방팔방 병원 관리를 해왔지만 이제는 진정 누군가가 필요해진 시점이 온 것이었다.

병원장님도 언제까지 혼자 다 할 수 있겠느냐고, 실장 한 명 뽑아놓으면 상담도 시키고 직원관리도 시키고 이것저것 좋지 않겠느냐며 하루빨리 실장급 직원을 채용하길 권유하셨지만 사실 내 마음속 한편에는 걱정스러운 부분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전 글의 사례처럼 병원에 좋지 않은 분위기가 생긴다던지 옳지 않은 방향으로 관리가 된다던지의 불안한 부분이었다. 내 시간을 줄여가며 직접 모든 관리를 해온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는데.. 열심히 다져온 병원의 분위기며 상황이 달라지길 원치 않았다.  

물론 내 걱정과는 다르게 병원 인력시장에는 좋은 인성과 실력을 가진 실장급 직원들도 당연히 존재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막상 '00 병원 간호실장 채용' 이라는 공고를 올리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병원의 실장, 매니저나 팀장급 직원을 뽑을 때에는 공고를 통해 해당 경력직 채용을 하곤 한다. 사실 대부분의 병원은 처음 개원 시부터 병원장과 오랜 기간 함께한 실장 직원이 한 두 명씩은 꼭 있기 마련인데, 그런 자리가 오랜 기간 공석으로 비워져 있는 것이 병원장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채용 즉시 발 빠르게 실무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직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존의 경력직을 당연 우선적으로 채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중간관리자를 채용할 경우에 제일 중요한 것은 기존 직원과의 화합이다. 처음 보는 관리자를 받아들여야 하는 직원들도 고려되어야 하고 바꿔서 생각해 보면 새로운 환경과 업무스타일에 적응해야 하는 신규 관리자의 입장도 고려되어야 한다. 게다가 병원은 여직원이 상대적으로 다수이고 실 상황에서 서로의 합이 딱딱 맞아 돌아가야 하는 업장이다 보니 직원들 간의 화합이 아주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관리자를 데려다 놓자니 우리 병원 분위기나 업무방식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맡아주면 좋겠는데..라는 욕심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 같다.


타 병원의 실장급 공고를 몇 주 간 들여다보면서 실장급 면접을 보기 시작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가만 보니 막내로 입사했던 그 친구가 눈에 띄었다. 어느새 1년 이상 근속하고 있던 그 친구는 항상 환자들의 칭찬 1등, 일을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무엇보다 직원들과의 관계에서도 나이는 어리지만 통솔력이 뛰어난 친구인 것이 이미 보증되어 있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고민하던 차에 병원장님께 혹시 그 친구를 팀장으로 승급시키는 것이 어떠실지 여쭤보니 원장님께서도 흔쾌히 찬성하셨다. 이미 내부 분위기 역시도 그 친구가 하면 잘하겠다.라는 것이 애써 내 입으로 설명하고 다니지 않아도 모두가 받아들여지는 다행스러운 상황이었다.




몇 해 전만 해도 막내였던 똘똘한 그 직원을 팀장으로 승격시키고 나니 대표로서의 내 업무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되었고 직원관리, 원내관리도 좀 더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직원들은 저마다 병원에 할 말이 끝없이 생겨나는 것이 당연한데, 그런 면담 요청을 1차적으로 팀장이 해결해 준다던지, 병원의 크고 작은 운영적인 부분에서도 함께 손이 되어주니 든든함이 배가 되었다. 게다가 우리 병원과 직원들에 대해 당연히 잘 알고 있으니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부분까지도 찾아내어 일을 해 주는 것이 역시 내부에서 승격하길 참 잘한 것이었다.

물론 나도 그 직원에게 팀장자리를 만들어 주고선 병원관리, 직원관리에 손을 뗀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었고. 여전히 매일같이 병원에 가서 유니폼을 걸쳐 입고 데스크나 주사실 곳곳을 뛰어다녔고 직원들 면담도 했지만 여기에 팀장이 도와주며 함께 병원을 꾸려가니 훨씬 안정적인 모양새가 되었다.



물론 이 직원을 팀장급으로 승격시키는 것에 있어서 기존 직원의 잡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직원 중에 나이가 꽤 있는(나보다도 훨씬 많은) 간호사 한 분이 있었는데 내가 이 친구와 함께 비슷한 시기에 채용했던 간호사였다. 갑자기 자신과 비슷한 때에 들어온, 그것도 본인보다 경력년수가 다섯 손가락 이상 적은 직원을 팀장이라며 따르라 하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는지 그 친구에 대한 근거없는 험담을 나나, 다른 직원들에게 하고 다니기 바쁜 것이었다.

그런 상황을 보니 처음 내가 병원에 왔을 적 생각이 많이 나기도 했던 것 같다. 병원사람이 아닌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던 병원직원들처럼 그 직원도 비슷한 마음이었겠지.

내가 이 직원을 팀장으로 승격하고 초기에 단단히 잡은 것은 이런 잡음을 내 선에서 확실히 해결해 주고,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근거 없는 소리소문에 팀장도, 직원들도 휘말리지 않도록 기존의 분위기를 잘 구성해 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팀장이 된 친구도 본인의 역할에 충실하고 원장님 포함 모든 직원들의 인정을 받게 되니 다행히 이런 잡음은 저절로 사라지게 되었다.




건강이슈로 1년간 쉬어야 했던 기간에도 스승의날과 내 생일에는 항상 회사로 꽃과 자필편지를 보내주던 고마운 팀장이었다.


이 친구가 팀장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나와 함께 했던 업무는 각 부서별 업무 프로세스 및 원내 업무시트를 만들고 체계화하는 것이었다. 함께 열심히 만든 업무매뉴얼과 업무시트들은 여전히 병원에서 잘 활용되고 있다. 근무 중이었던 몇 해 전, 팀장 업무가 과중했는지 몸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1년 정도를 쉬어야 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짧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이 매뉴얼과 업무시트 덕분에 나는 팀장의 공석에도 큰 무리 없이 여느 때처럼 병원운영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 팀장은 1년 뒤 몸을 회복하고 자리로 돌아와 주었고, 함께 업무를 하다가 내가 회사를 퇴사하면서 함께 퇴사하고 동시에 결혼해 현재는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내고 있다.




만약 당시 원내에 이 친구가 없었다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외부에서 실장을 뽑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훌륭한 친구가 있었고 내가 있어도 나름 힘든 부분들이 많았을 텐데 잘 따라와 주었음에 고맙고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내부 직원의 역량을 체크하는 것도 관리자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현 자리에서 보다 더 다양하고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직원임에도 본인 자리에 머물러만 있는 것은 아닌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체크해 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회사(병원)가 성장해야 직원도 성장하고, 직원이 성장해야 회사도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MSO 병원경영 서적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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