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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May 16. 2017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할 줄 안다는 것.

늘 나가던 공원에 두리와 함께 산책을 갔다. 날이 더웠지만 미세먼지도 많지 않았다. 산책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요즘은 바로 공원의 입구로 들어가지 않고 공원과 육교로 이어져 있는 단지 안 작은 산책로를 거쳐서 간다. 조금이라도 많이 걷기 위해서랄까? 아무튼 단지 안 작은 산책로를 지나 육교를 건너 이 동네 강아지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원 안 동산에 다와갈때 쯤이었다. 동산이라 해봤자 아주 작은 언덕이지만 여러가지 규제들에 얽매어 살아가는 도시 강아지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었다. 



안다. 그 공원은 정말이지 넓고 푸르고 걷기에도, 운동을 하기에도, 그냥 누워만 있기에도 딱 좋은 보기 드문 도시 속 공원이라는 것을

킁킁 냄새를 맡는 두리를 따라 동산에 발을 들여놓는데 순간 두 발짝 쯤 앞에 폭. 하는 소리와 함께 골프공이 떨어졌다. 조금만 더 앞서 나갔더라면 내 머리위로 혹은 두리의 작은 몸 위로 떨어질뻔했다. 순간 이 골프공은 도대체 어디서 온건지 멍 해질 무렵 조금씩 화가 나고 있었다. 개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이 공간에서 누가 골프를 친단 말인가. 그것도 풀 스윙으로. 골프공은 그 크기는 작지만 아주 단단하고 실속있게 사람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 그것도 풀 스윙으로 날아온 골프공이라면. 혹 지금 누군가 골프를 치다가 날라온 골프공이 아니라, 전에 골프를 치려 공원을 다녀간 사람이 친 골프공이 나무에 걸려있다가 바람에 흔들려 떨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순간 20m쯤 옆에 또 다른 골프공이 폭. 소리를 내며 착지를 했다. 누군가 계속 공원 안에서 풀 스윙으로 공을 날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곧이어 동산 바깥쪽에서 한 중년의 아저씨가 큰 골프채를 잡은채 공을 찾으러 오고 있었다. 화가 났다. 늘 정자에 앉아계시는 노인분들이 맞았으면 어쩌려고, 빠른 걸음이 힘들어 보조기와 함께 거닐고 있던 할머니에게 떨어지면 어쩌려고,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마실을 나온 작은 아이가 그 공을 맞았더라면, 유독 강아지를 많이 키우는 이 동네에서 나처럼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왔다가 그 작은 반려견이 골프공에 맞았더라면. 끔찍했다. 안다. 그 공원은 정말이지 넓고 푸르고 걷기에도, 운동을 하기에도, 그냥 누워만 있기에도 딱 좋은 보기 드문 도시 속 공원이라는 것을. 골프 라운드를 치는 필드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좋은 날씨가 한 몫 더했다는 사실도. 그러나 너무나 이기적이었다. 노인분들이나 반려견들이 많이 나오는 12시에서 2시 사이에 공원에서 골프라니. 그것도 풀 스윙이라니.



‘아저씨, 여기 공이요. 공에 거의 맞을 뻔 했어요.’

먼저 20m쯤 떨어진 곳에 놓인 골프공을 찾으러 가는 아저씨를 보며 몇 번을 망설였다. '이런데서 골프를 치면 어떡하냐고 냅다 말해볼까? 그러다 뭐 어떻냐고 왠 난리냐고 오히려 나에게 따져물으면 어쩌지?’ 그 짧은 시간동안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그냥 지나가게 된다면 그 아저씨는 오늘같이 날이 좋은 날에 또 다시 이 공원에 나와 풀 스윙을 날릴 것이 분명했다. 말하지 않고 지나간다면 말하지 못한 나에게 화가 날 것 같다는 생각에 아저씨에게 이야기를 하려 내 옆에 떨어졌던 공을 주워 아저씨에게 갔다. 

‘아저씨, 여기 공이요. 공에 거의 맞을 뻔 했어요.’ 라고 하자 아저씨는 나에게 다가오며 곧 바로 ‘죄송합니다. 공이 거기로 갈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셨다. 내가 처음부터 ‘아저씨 이런데서 골프를 치시면 어떡해요, 맞을 뻔 했잖아요’라며 공격적으로 말하지 않은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상황에서 나에게 사과를 하시는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의 아버지 나이대와 비슷하신 아저씨께서 딸뻘인 나에게 고개를 여러번 숙여가며 사과를 해주시는 것에 뭐랄까. 오히려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상대가 누구건 자신의 실수 혹은 잘못을 진심으로 고개숙여 사과할 줄 안다는 건 결코 작지만은 않은 일임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아저씨의 고개숙인 사과에 사과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았다.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면 상해던 기분이 혹은 놀랐던 상대의 가슴이 조금이라도 풀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늘 억울하고 기분 나쁜일이 있어도 ‘그냥 내가 한번 더 참지’하면서 넘어갔던 일들이 쌓이다보니, 이제 더이상은 내가 나를 위해 참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상대에게 내가 느낀 감정을 되도록 집고 넘어가려 노력하는데 그보다 중요한 일은 골프공 아저씨와 같이 내가 상대의 기분에 혹은 상대에게 피해를 입힌 일이 있다면 창피하다고 혹은 미안하다고 도망가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죄송하다고,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고개숙여 사과하는 것이었다. 간혹가다 예민하고 겁 많은 두리가 정면으로 혹은 너무 지나치게 가깝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왕’하고 짖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도 산책을 나오는 길 가깝게 다가온 할머니에게 ‘왕’하고 짖는 두리를 대신해 고개숙여 사과드렸다. ‘할머니, 죄송해요. 많이 놀라셨죠.’라며. 상대는 그저 지나가려 한건데 안 그래도 흉통이 깊어 소리가 크게 나는 두리가 ‘왕’하고 짖는다면 작지만은 않은 두리의 몸짓에 크게 놀라는 사람 혹은 기분나빠하는 사람도 있다. 전에는 그런 상황이 닥치면 얼른 두리를 안아들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빠르게 걸어가기 일수였지만 요즘에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한다. ‘갑자기 놀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면 상해던 기분이 혹은 놀랐던 상대의 가슴이 조금이라도 풀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진심을 다해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안다는 것은 곧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자신이 저질렀을 실수와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다는 것이다. 스스로 성잘해나갈 수 있는 다양한 일들 중에 자신의 실수를 혹은 잘못을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항이다. 그러니 지금 누군가에게 잘못을 했다면, 그대의 입장에서 아무렇지 않은 실수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창피해하지 말고 외면하지 말고, 주저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 사과하자. 진심을 다해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사과를 건네는 순간 느끼게 될 것이다. 나에게 고개 숙여 사과를 한 아저씨처럼, 할머니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드린 오늘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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