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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May 25. 2017

세상이 이토록 남자와 닮아있을 줄이야.

취업을 한다는게 꽤 연애의 과정과 그것에 따라오는 감정들을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어쩌면 그 과정까지 비슷할지 모른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과 생각일지는 모르나 ‘그것’들의 닮은 점에 대해 적어보려한다. 어쩌면 다시는 느끼지 못할 감정일지도 모르니. 아 그리고 성차별적인 생각이나 여성편파적인 감정과 생각이 아님을 밝힌다. 아주 단순하게 내가 여성으로써 하게되는 이성적인 연애의 상대가 남자일 수 밖에 없어 벌어지는 웃픈 해프닝 정도로 본다면 좋겠다.

*진실과 허구가 섞인 글입니다*


퇴사(이별)를 고민하기 시작한건 입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였다. 처음(만남)부터 잘 맞지 않았다. 이상하게 겉으로는 좋아보이던 그 곳은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늘상 지루하기만 했다. 시간도 잘 흐르질 않았다. 특히나 밤까지 하루종일 회사에 붙어있어야 하는 날이면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느낌에 우울함에 지겹도록 sns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결심했다. 퇴사를 하기로. 조금 더 나를 위한 곳을 찾아보기로. 그리고 그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취업을 준비하는 반년의 시간동안 항상 같은 상태였던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백수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친구를 만나 신나게 놀거나 금고 안에 금괴를 여럿 둔 사람처럼 나태하고 게으르게 빈둥대며 집에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을 보내고 나면 내 안에 깊숙히 묻혀있던 자책감과 자괴감과 서둘러 취업을 해야한다는 압박과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는 답답함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잠깐 든 선잠에 가위를 눌리기 일수였다. 그렇게 잠을 설친 밤을 지나고 아침을 맞이하고 나면 그 하루는 미친듯이 여기저기 지원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왜 회사를 나왔는지, 무엇을 잘 하고 어떤 회사를 가고싶은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어디든 가야겠다는 생각야 마음만 급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니고 또 마음을 진정시키고나면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회사를 나온게 아니였지 하면서. 이러기를 숱하게 여러번 반복하다보면 온 정신이 피폐해진 것을 느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온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오로지 취업만을 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온 힘을 다해서 간절하게 원하던 곳에서 답이 오지 않는다면 그 좌절감은 흡사 내가 좋아하는 남자의 거절로 가득 찬 답장을 받은 느낌과 비슷하다.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그렇게 열심히 너를 보려고 노력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니. 하는 심정과 비슷해지는 것이다. 상대가 져버린 기대감에 실망하고 그렇게 상대를 원망하다가 면접때 봤던 나 외의 면접자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그래, 그때 그 사람들 나보다 정말 멋졌어. 말도 잘하고 스펙도 나보다 훨씬 좋았어. 라면서. 그러면 갑작스레 작아진 내가 느껴진다. 조금 더 잘해줄걸. 조금 더 온 마음을 다해 신경써줄걸 하면서.


2차 면접의 결과를 메일로 보냈다는 문자를 받고도 한참이나 메일을 확인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불합격일 거라는 확신이 가득했으니까. 정말이다. 나는 무조건 아니라는 것을 염두한채 '나머지 두명 중 누가 됐을까’를 생각했다. 그래 나라면 이 사람을 뽑았을 것 같아. 라면서. 결과를 담은 메일이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지 못하는 마음은 마치 헤어지자는 연락을 한 남자의 메세지가 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으로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 보지 못하는 여자의 마음같았다. 어차피 헤어지자는 연락임을 뻔히 아는데 눈으로 보면 마음만 더 아플 것이다. 가슴에 찔려있는 칼을 한번 더 힘주어 누르는 것일거다. 또 진짜로 헤어진 느낌이 들면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타이밍이 올 것이다. 받아들여야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할것을 뻔히 알기에 메일을 열 수 없었다. 이별을 할때 느끼는 배신감과 좌절과 절망이 모두 찾아왔다. 나는 전혀 몰랐다. 세상이 이토록 남자와 닮아있을 줄은.


그러다 다른 일을 처리하기 위해 연 메일에서 문득 내가 선택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내가 혼자서 해왔던 착각과 오해와 자책섞인 생각들로 가득찼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우리 다시 잘해보자 내가 노력할게’와 같은 메세지를 남자로부터 받은 느낌과 비슷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번 몰랐다. 세상이 이토록 남자와 닮아있을 줄은. 하지만 내가 아는게 하나 있다면 물론 예외는 있거니와, 이 세상 거의 모든 일들은 각자가 하기 나름이다. 이거 하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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