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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Jul 16. 2017

나는 개명을 했다.

이름이 없는 나의 삶

본명을 선뜻 밝히지는 못하니 개명 전 이름은 준서, 개명 후 지금의 이름은 소은으로 기록하려한다.


나는 개명을 했다. 내 지금이름은 원래 내 이름이 아니었다. 왜 바꿨냐구? 나도 잘은 알지 못한다. 다만 한번 뿐인 이번 삶에서의 평화가 부디 오래도록 평탄하게 지속되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등불같은거라고 해두자. 어찌돼었든, 자아가 성립되지 않았던 중학교 2학년시절 나는 이름을 바꿨다. 원래의 이름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냥 어쩌다보니 이름을 바꾸게 되었는데, 처음 내가 태어나고 이름을 지을때 이름에 쓰이는 한자를 고심해서 고른 것도, 나와 딱히 잘 맞는 이름도 아니었고 그저 이름의 뜻만 고려하여 지었던 원인이 컸다. 나의 엄마는 내 사주팔자에 적합한 한자로 지어진 이름 세가지를 가지고 오셨고 나에게 선택하라 하셨다. 한 눈에 들어왔던 이름은 지금의 이름인 '소은'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소은으로 불리었다. 그런데 이게 참 이상하다. 나와 처음 만나게 된 사람들은 당연하게 나를 소은으로 알고, 소은이라 불렀지만, 중학교2학년 전의 친구들은 모두 나를 '준서'라 알고 있었고 개명을 한 후에도 '준서'라고 불렀다. 가족또한 마찬가지었다. 짧은 세월이라 할 수 있지만 14년간 불러왔던 이름과 그 이름속에 담긴 시간들을 한 순간에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준서이면서 소은인 삶을 살아가게 되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어느덧 소은이라 불리어지면서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거의 준서로 살아온 시간과 맘먹는 세월을 살게 된 것이다. 근데 이게 참 이상하다. 이쯤 돼면 소은이라고 불리는 일이 훨씬 많았을 테고, 준서라 불리는 일은 가족 외에 있기가 힘들만도 한데 나는 아직도 조금 혼란스럽다. 준서도, 소은도 모두 내 이름이 아닌 것 같은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저 아무렇게나 불리어도 상관 없는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달까. 아직도 회사나 내가 참여하는 모임에서 누군가 나를 '소은씨' 혹은 '소은아'라고 부르는 순간, 그 순간 느껴지는 그 낯설음은 적응하기에 힘이 든다. 그렇다고 집에서 가족들이 나를 '준서야'라고 부르는 순간이 익숙한 것도 아니다. 그 순간도 지울수 없을만치 낯설다. 그래서 나는 이름이 없는 삶을 사는 느낌이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그리워할때 가장 많이 떠오르는건 그 사람의 눈빛과 행동과 말투일 수 있으나 나에게는 이름이다. 한 글자 한 글자 적다보면 그 누군가의 눈빛과 행동과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져온다. 나 스스로 중요하다 생각하는 그 이름 석자가 나에게는 없다 생각하면 느껴지는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명확한 이름이 없는 나는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를 주기도 한다. 아이러니하지만 이름이 없는 삶이 마음에 든다는건 지금의 내가 나 스스로를 꽤나 만족스럽게 생각한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름이 없는 지금의 삶이 나쁘지 않다. 웃긴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개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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